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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잠시 멈춤
구희상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5월
평점 :
태국은 내가 처음 해외여행으로 간 곳이다. 방콕은 내가 처음 배낭여행으로 갔다 온 곳이다. 첫 배낭여행 이후 몇 년 동안 매년 태국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보통 치앙마이나 파타야 등을 다녀왔는데 태국에서 그 출발지점은 언제나 방콕이었다. 작은 배낭 하나를 매고, 겨우 며칠 머무는 방콕이었지만 여행의 방법이나 시선을 조금만 바꾸어도 달라진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8년 전 마지막으로 방콕을 다녀온 후 그 지독한 매연과 불편한 택시 등에 질려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누군가 짧은 여행으로 어딘가를 간다고 할 때면 방콕을 추천한다. 그리고 몇 년이 시간이 흐른 후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다. 몇 번을 다녀왔지만 아직 가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 음식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방콕에서 한 달 살기.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한때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코로나 19 이전까지만 해도 나의 눈길이 간 부분이다.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언제나 나를 유혹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내가 방콕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다고 해도 그것은 잠깐의 일이다. 이후 방콕이나 태국 다른 지역은 늘 관심지역이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해야 하는 지금은 휴양지 위주로 바뀌었지만 방콕의 저렴하고 훌륭한 호텔 등은 쾌적한 여행에도 상당히 도움을 준다. 내가 가지 않는 동안 그랩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보편화되어 택시의 바가지 요금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이런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잘 모르는 방콕과 즐겁게 경험한 방콕의 여기저기를 다시 보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예상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사라졌다.
단순한 여행에세이가 아니다. 인문 여행서 두 번째 티켓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예상한 방콕의 모습은 많이 발견하지 못했지만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정보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많이 보고 배웠다. 세 파트로 나누어 풀어내는 방콕 이야기는 내가 갔다 온 시간의 흐름만큼 차이가 많이 난다. 물론 변함없는 부분도 많다. 여행 에세이에 인문을 붙였는데 읽다 보면 이 부분이 더 눈에 많이 들어온다. 방콕에 대한 인물 사회 정보에 더 집중하고 있어 여행의 추억이나 정보를 얻는 대목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물론 여행을 가기 전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기를 바라는 독자라면 아주 좋은 기초서적이 될 수는 있다.
그가 꼽은 방콕의 여행지 중 하나가 국립박물관이다. 처음 배낭여행을 갔을 때 이곳을 방문했었다. 낯선 문화재는 신기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왕궁과 사원들을 해상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관광했던 것이 기억난다. 학교 선생하는 친구와 가서 그런지 왠지 수학여행의 느낌이 있었다. 충실한 일정이었다고 자평하는데 실제 방콕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본 것은 그 뒤에 다시 방문했을 때다. 카오산 로드 근처에 머물면서 발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강의 지선에서 운행하는 보트를 타고 시내에 나가기도 했고, 가장 저렴한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런 나의 행동은 하나의 간단한 체험이었지 삶이 아니었다. 필요하면 바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낡고 작고 화면도 흐린 테레비로 한국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 당시에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크기였다.
개인적으로 파트 1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 자신의 경험이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파트 2와 3으로 넘어가면 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보고서처럼 다가온다. 태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알면 좋지만 몰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인문’에 초점을 맞춘 부분이다. 개인의 경험이 조금 묻어 나오지만 연구원의 기록처럼 다가와 재미는 떨어진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반복되는 부분도 많다. 몇 년 사이에 바뀐 문화도 업데이트가 되어 다시 간다면 참고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태국 민주화와 왕에 대한 부분은 내가 갔다 온 이후 많이 바뀌었고, 잠시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게 한다. 연구자의 시선보다 여행자의 시선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말처럼 방콕의 매연 냄새가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