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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지나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싼마오의 에세이를 읽었다. 인터넷 서점 기록을 뒤져보니 2009년에 <사하라 이야기> 2권인 <흐느끼는 낙타>를 읽었었다. 2권을 재밌게 읽어 1권은 사 놓았는데 역시 쌓아두기만 했다. 어딘가에 묵혀 두고 있는 모양인데 현재 찾을 수 없다. 전작도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재미있다. 사하라를 떠난 후 카나리아 섬의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 터를 잡고 사는 이야기다. 열두 편의 에세이는 이 알콩달콩한 부부의 삶과 이웃 이야기를 맛깔나고, 현실적으로 풀어낸다. 읽으면서 1970년대를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읽는데 이질감이 전혀 없다.
이 부부가 카나리아 섬으로 오게 된 이유는 사막의 내전 때문이다. 섬에 집을 구한 후에도 호세는 사하라에서 한동안 일을 한다. 위험의 정도가 심해지자 그 일을 그만 두는데 그들의 친구는 아내의 닦달에 계속 그 위험한 일을 한다. <대부여 돌아와요>에 실린 이야기다. 친구가 자신의 모습을 잃고 누군가의 남편으로 변했다고 지적한 부분을 읽고 안타까웠다. 이 이야기를 한국의 수많은 엄마에게 적용한다면 누구 엄마로 전락한 여성들이 떠오른다. 싼마오는 부부가 누군가에 종속된 관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그녀도 시어머니와 시누이 부부가 왔을 때 보여준 모습은 문화적 차이와 함께 시대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호세와 그 누나 등이 보여준 행동은 놀라울 정도로 이기적이다.
<플라스틱 아이들>을 읽으면서 현재 아이들이 유튜브와 게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과 겹쳐졌다. 나라고 뭐 특별히 달랐겠는가 말이다. <수호천사> 이야기는 자신이 나이가 들고, 부모가 되는 순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에피소드다. 호세의 비중이 가장 많은 이야기는 아마도 <가출한 아내에게>일 것이다. 대만으로 온 싼마오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호세의 절실한 마음과 예상 외의 전략이 읽는 재미를 북돋아준다. 아내의 답장이 없어 괴로워하다 낸 작은 잔략은 아내의 화를 북톧고, 온갖 욕설을 내뱉게 한다. 덕분에 집ㅇ로 돌아오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단축되었다. 그 전략은 이 에세이를 천천히 읽으면서 반전 같은 재미를 누리면서 즐기길 바란다.
이 책에서 가장 먹먹한 이야기는 <작은 거인>과 <어느 낯선 사람의 죽음>일 것이다. <작은 거인>의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열두 살 아이가 엄마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개 일하고, 가정폭력을 견뎌내는 모습은 대단하다는 감탄을 넘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 낯선 사람의 죽음>은 카나리아 제도에 온 수많은 북유럽 남성 중 한 명의 죽음을 다룬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의 마지막 모습은 씁쓸하다. 하지만 이 모습보다 이 노인의 최후를 대하는 이웃들의 너무나도 개인적인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싼마오와 호세가 이 노인을 병원에 데리고 가고, 장례식까지 처리한다. 영사관마저도 노인의 병원 문제는 관여하지 않았다.
<상사병>은 호세의 입을 통해 싼마오가 꿈꾸는 미래의 한자락을 풀어낸다. 뭐 거기에 살짝 호세의 바람도 묻어있지만 구체적이고 꼼꼼한 계획은 ‘뭘 그렇게까지?’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카나리아 제도 유람기>는 두 부부가 카나리아 제도를 돌면서 각 섬에서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것이다. 섬의 관광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대목과 관광지로 발전한 섬으로 이탈하는 다른 섬주민들 이야기가 각 섬의 특징들과 함께 어우러져 잘 요약되어 나온다. <털보와 나>는 간략한 그들의 결혼 에피소드다. 이 이야기에서 여성이 독립된 존재란 사실을 분명하게 말한다. 아마 이런 사실들이 그녀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한 에세이 속에 다양한 형식으로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