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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 크리 ㅣ 오늘의 청소년 문학 31
일요 지음 / 다른 / 2021년 4월
평점 :
이 소설에 끌린 이유는 보통의 좀비물과 다르다는 것과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작가의 말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이 소설은 기존의 좀비물과 다른 것은 맞지만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했다. 먼저 기존의 좀비물처럼 이성을 상실하고, 사람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다. 블루Z바이러스가 등장하는데 증상도 다르다. 오히려 최근에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이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들을 잠복체라고 부르고, 없는 사람들을 건강체라고 부르면서 차별하는 미래 사회를 그렸다. 가독성은 좋은 편이지만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는 조금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크리는 지하 17층에서 세탁 등의 노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냥 보면 평범한 아이다. 할리 아줌마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란다. 이들이 사는 곳을 생츄어리라고 하는데 밤이 되면 선전노래와 함께 분리정책 홍보 영상이 나온다. “태양은 잠복체를 죽여요.”란 문구는 왜 이들이 밤에 일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표어다. 잠복체는 밤에 열심히 일하고, 아주 열악한 음식을 배급받고, 아침이 오면 잠자리에 든다. 이에 반대편에 서 있는 아이가 홍보 영상에 나오는 로미다. 건강체이면서 지상층에 살고 있다. 프레지덩의 아이로 늘 영상에 나와 홍보를 한다. 단순 비교하면 더 행복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크리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밝다면 로미는 훨씬 좋은 환경이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고 작은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단순한 이분법 속에 작은 차이를 집어넣었다.
크리는 파드라는 초능력을 가진 아이다. 이 능력을 알고 있는 인물이 바로 라키바움이란 타워 중앙컴퓨터와 연결된 사람이다. 크리가 자신의 초능력을 발현한 것을 발견하고, 몰래 타워로 데리고 온 인물이다. 그녀가 바란 것은 크리가 파드를 사용해 블루Z바이러스를 없애는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다. 생츄어리에서 글자를 배우지 못한 크리는 파드를 이용해 책 내용을 알게 되고, 염동력도 사용 가능하다. 목욕이란 것도 타워에 올라와 처음 해보고, 맛있는 음식도 처음 먹는다. 크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을 돌보아준 할리 아줌마를 찾는 것이다. 타워를 돌아다니려면 피부색에 파란 반점이 없어야 한다. 이 반점은 잠복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잠복체들이 잠을 잘 때 쏘는 빛에 의해 이런 파란 반점이 생긴다. 재밌는 설정 중 하나는 건강체들이 홀로그램으로 자신의 피부색을 옷처럼 여러 색으로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도구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속인다.
두툼하지 않은 분량에 체제 전복을 그린 소설을 다루긴 쉽지 않다. 몇몇 곳에서 디테일이 살아 있다고 해도 생략된 부분이 너무 많다 보니 이야기의 비약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 소설도 그런 비약이 심하다. 잠복체와 건강체의 차별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지 간결하게 나오지만 이 차별을 이용해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의 설정으로 타워를 조정하는 시스템의 핵심으로 라키바움을 두고, 파드란 초능력을 이용해 단숨에 전복시키는 장면들은 통쾌할지 모르지만 지속적인 개혁을 이루는 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런 혁명 같은 일을 한 명의 소녀가 초능력으로 이룬다는 전개는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시리즈로 나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크리와 로미의 대화에 어색함을 느낀다. 꼰대라서 그런지 크리가 로미에게 반말하고, 내뱉는 어투가 남자 같고, 로미가 여성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서울 태생이 아니기 때문일까? 로미의 비중이 뒤로 가면서 줄어들고, 비밀이 드러나는 대목에서 크리가 보여준 잔혹한 진실 부분은 생각할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하지만 기존의 좀비물과 다르게 접근한 부분과 이것을 이용해 자신들의 특권을 더 강화시킨 사람들이란 설정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실제 현실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 문제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과 현실을 깨달았다고 그 현실이 바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내가 시리즈를 이야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난관과 문제들은 이야기를 더욱 확장시켜주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