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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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집한 티셔츠에 대한 에세이다. 그가 소장한 수백 장의 티셔츠가 열여덟 편의 에세이로 살짝 흘러나왔다. 사진과 함께 그 티셔츠에 대한 간결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티셔츠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대학 때 만들어 입었던 동문 티셔츠에 대한 나의 애정은 상당했는데 너무 입다보니 낡고 더러워 버려졌다. 하루키도 자주 입는 티셔츠는 버렸다고 한다. 책 속에 나온 티셔츠 중 자주 입는 것도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도 입지 않은 티셔츠도 있다. 사실 이 에세이는 바로 ‘이런저런 이유’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에세이도 상당히 좋아한다. 에세이의 매력에 빠진 것은 소설보다 훨씬 뒤인데 사실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그가 에세이에 보여준 삶과 내가 읽은 한도 안에서 알 뿐이다. 마라톤, 철인3종 경기, 위스키, 재즈 등의 음악, LP판 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본 것이라 알고 있지만 그가 미국 대학에서 강의한 것이나 그곳에 몇 년이나 머문 것 등은 낯선 정보다. 개인에 대한 덕질을 했다면 이런 정보들이 나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사소한 정보들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면서 휘발성 정보가 되었다. 물론 <먼 북소리>나 음악 대담을 다룬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같이 책으로 나왔다면 다른 문제다.


하루키가 자신의 컬렉션 중에서 가장 아끼는 티셔츠라고 말한 것은 ‘TONY TAKITANI’ 티셔츠다. 마우이 섬 시골 마을 자선 매장에서 1달러에 샀다고 한다. 토니 타키타니가 어떤 사람인지 맘대로 상상하다 단편 소설을 썼고, 이것이 영화화되었다고 한다. 재밌는 에피소드다. 하루키가 결코 입지 못하는 티셔츠 중 하나가 바로 자신과 자신의 책을 소재로 한 티셔츠다. 하루키의 인기가 세계적이다 보니 많은 나라에서 굿즈로 제작된다. 이 중 하나가 티셔츠인데 그가 자신의 이름이 나온 티셔츠를 입고 다니기 부끄럽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입는다고 누가 뭐라고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너무 유명한 작가이지만 개인 사생활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으니 이 부분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서핑 티셔츠에서 시작해 동물, 대학교, 록 가수, 차량, 홍보용, 위스키, 맥주 등에 대한 티셔츠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직접 산 것들 대부분은 싼 가격에 산 것들이다. 지역 할인 매장을 이용해 1달러 대에서 산다. 물론 록 가수의 콘서트 장에서 산 것은 다르다. 선물로 받은 티셔츠도 대단히 많다. 에피소드 중 하나는 서점에서 티셔츠를 사려고 했는데 그를 알아본 직원 때문에 수많은 책에 사인을 열심히 해주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때 받은 티셔츠는 선물로 공짜. 특별 인터뷰를 보면 그의 책이 처음 나온 후 하와이의 중고 티셔츠 가격이 두 배 이상 뛴 모양이다. 이 책의 효과라고 진단하는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 에세이에 실리지 못한 수많은 티셔츠들이 이 인터뷰에 실려 있다.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하루키의 일상이 조금씩 나온다. 그의 에세이 특유의 매력적인 문장과 함께 어우러져서 말이다. 자신의 이름이 나온 티셔츠는 입기 어렵다고 하면서 다른 록 가수의 티셔츠는 입는 것이나 어떤 특정 단어가 프린팅 된 티셔츠는 좋아하는 모습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지만 뭐 어쩌겠는가. 옷은 자신이 입는 것인데.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무지 티셔츠를 입게 된 사연을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나의 저질 기억력을 떠올려봐도 하루키가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마라톤 등을 할 때 입은 옷은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어쩌다 모였다고 하지만 자신이 좋아해야만 그것이 가능한 것을 떠올리면 그가 평생 읽지 않을 책이나 듣지 못할 음반에 대한 이야기가 왠지 나의 수집욕을 연상시킨다. 나도 평생 읽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자료들을 얼마나 열심히 모았는가.  아내가 낡았다고 버리려고 한 물건들이 갑자기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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