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리 dele 2
혼다 다카요시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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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 3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두 편은 이전 이야기들과 별 차이가 없지만 마지막 한 편은 분량이나 내용 등에서 훨씬 많고 앞에 깔아 둔 설정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그림자 추적>은 작가가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익숙한 설정이고, 이야기의 여운이나 확장성을 무너트린 느낌이다. 앞의 두 편이 사회의 모순이나 흔히 생각하는 설정을 뒤틀어 주위를 환기시킨 것과 비교된다. 물론 이것이 개인 취향 차이일 수 있다.


<언체인드 멜로디>란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 <사랑과 영혼>이었다. 나의 연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의뢰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그 데이터가 있는 컴퓨터를 찾아야 한다. 의뢰인이 지정한 데이터를 지워야 한다. 몰래 집에 들어갔다가 형사들이 들이닥치고, 그곳에 흘린 신분증 때문에 의뢰인의 동생이 찾아온다. 동생은 인기 밴드의 리더다. 삭제 요청한 데이터는 이 밴드의 원곡들이다. 흔한 설정이라고 생각할 때 작가는 한 번 더 비틀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준다. 좋은 음악이 잘 팔리는 음악이 아니라는 지적은 왠지 씁쓸하다.


<유령 소녀들>은 한 소녀가 사무소로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이 소녀는 의뢰인의 친구다. 친구를 통해 의뢰인의 죽음을 확인하지만 유타로는 이 소녀를 미행한다. 이 미행의 과정 속에 의뢰인과 소녀가 SNS에 어떤 사진을 올렸는지 확인한다. 의뢰인의 급여로 이런 음식이나 물건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읽다 보면 화려한 사진 이면에 숨겨져 있던 힘든 삶과 그 삶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사회안정망의 필요성을 느낀다. 물론 사회안정망이 있다고 해도 비극은 존재할 것이고, 인간의 욕망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림자 추적>은 케이시와 유타로의 과거사를 한 번에 정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타로의 동생 린이 어떻게 죽었고, 이 죽음이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준다. 당연히 그 영향은 유타로에게도 미쳤다. 동생의 죽음은 제약회사의 신약 실험과 관계가 있는데 신약 부작용 때문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보를 준 의사는 사고 죽었고, 부모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다. 이 이야기에서 최악의 상황은 이 소송을 중단시키기 위해 그들 주변 사람들이나 친척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인간의 탐욕, 두려움, 비열함 등이 뒤섞인 행동을 보면서 거대한 음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을 파헤칠수록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예상한 것과 다른 모습이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의 연속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2권까지 읽은 지금 마지막 설정에 아쉬움이 조금 있지만 각 단편이 담고 있는 죽음과 남겨진 자의 감정 들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들이 지우고자 한 데이터가, 그 데이터 속에 담긴 삶이, 그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없게 된 현실이 미스터리와 엮여 재미있는 연작 단편이 되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 중에서 읽지 않은 몇 편이 이런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는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 소중한 기억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삶의 한 모습이다. 읽으면서 유타로와 하루나의 로맨스를 조금 기대했는데 작가는 이런 부분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역시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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