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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설산 시리즈 4번째 작품이다. 앞의 세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다. 아마 집에 한두 권 정도 더 있을 것이다. 이 책도 사 놓고 상당히 묵혀 두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첫 연애소설이란 홍보문구를 기억하는데 작가는 이 연애도 미스터리처럼 풀어놓았다. 일곱 편의 연작 단편을 실고 있는데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이 단편집 최고의 작품은 첫 번째 실린 <곤돌라>인데 바람 피는 남자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아주 스릴 있게 표현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을 뒤집는다. 이번 단편집을 읽으면서 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이 단편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 단편집에 나오는 남녀는 모두 아홉 명이다. 이 중에서 한 명만 이 단편 속 커플과 관계가 없다. 커플은 셋이고, 한 커플은 가능성만 남겨둔 상태로 끝난다. 그 가능성을 풀어낸 단편이 <곤돌라 리플레이>다.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지려는 순간 첫 단편의 남녀 커플이 등장해 상황을 이상하게 이끈다. 이 작품에서 여자가 느끼는 감정이 폭발할 때 웃고,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 두 작품 사이에 낀 다섯 편의 단편들은 커플이 이루어지거나 <스키 가족>처럼 작은 반전을 품은 이야기들이다. <스키 가족>은 스노보드를 싫어하는 장인을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인데 이 편견을 살짝 깨부수는 훈훈한 마무리를 보여준다. <리프트>의 커플이 결혼한 후 이야기다.
<리프트>는 도쿄 한 호텔에서 근무하는 남녀 직원들이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에 보드를 타러 오면서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다룬다. 이 단편집에서 불운의 아이콘 같은 히다의 존재가 드러난다. 자신이 관심 있는 여자에게 바로 달려들지 않고 주변에 머물면서 기회만 노리는 인물이다. 연인보다는 친구나 믿을 수 있는 동료로 인식된다. 그의 옆에는 동기이자 바람둥이인 미즈키가 있다. 미즈키는 아키나와 사내 연애 중이지만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한다. 히다가 관심을 둔 마호에게 미즈키가 작업을 거는 듯해 충고를 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긴다. 이 일이 있은 후 히다는 호텔에 취직한 미유키와 만남을 이어가면서 프로포즈를 하려고 한다. 멋진 프로포즈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나타난 전 남친이자 <곤돌라>의 주인공인 고타가 나타나 그녀를 휙 채어간다.
히다의 불운은 <겔팅>에서도 계속된다. 그런데 그가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아 단편이다. 히다는 여자를 재미있게 만들지도, 여자가 관심 있어 하는 대화도 제대로 못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식축구만 열심히 떠들 뿐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오래 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미즈키는 여전히 바람 필 생각만 하고, 모모미는 미즈키에게 끌린다. 이 미팅은 히다를 위한 것이고, 그는 가벼운 만남만을 원할 뿐이다. 모모미가 히다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한 순간이 마지막에 나오는데 그것은 히다가 일하는 호텔에서 그의 모습을 봤을 때다. 이후 이 둘의 관계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데 <곤돌라 리플레이>에서 그 방법을 찾아낸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는 고타 부부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힘을 잃지만 말이다.
이 단편 속 남녀들은 스노보드를 상당히 좋아한다. 일년에 몇 번이나 이 스키장에 와서 보드를 탄다. 각각의 커플들과 함께 오는데 두 명의 남자만 그렇지 못하다. 히다와 미즈키다. 히다는 연애에 서툴러서, 미즈키는 히다를 도우면서 자신의 바람기를 채우기 위해서다. 다시 한 번 더 미즈키 등이 히다의 프로포즈를 돕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데 히다가 부상을 당한다. 뭐지? 역시 불운의 아이콘인가 하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지고, 웃게 된다. 연애하는 남녀의 심리 표현을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더 이상하고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 모두 다 읽은 지금 갑자기 이 훈훈함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떠올린 것은 왜일까? 최근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