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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ㅣ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평점 :
잘 생긴 남자의 반쪽 사진이 실린 표지가 참 인상적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 2020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영화 원작 소설이란 문구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나 자신이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다고 해도 이 플랫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다. 간단한 소개에 의하면 호텔에서 일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다 휴식이 필요해 시칠리아에 갔다가 마피아 가문의 젊은 보스 마시모에게 붙잡혀 365일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약간 뻔한 듯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 설정이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첫 등장한 마시모의 폭력적인 성 생활을 내세워 뭐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뛰어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로맨스란 문구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 중 일부는 노골적인 묘사와 표현들로 나를 놀라게 했다. 한 인용에 따르면 “한마디로. 여성을 위한 책이다“라고 했는데 이 문장을 앞의 소설에서 들은 적이 있다. 실제 많은 여성들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사서 읽고 집 책장에 꽂아둔 것으로 알고 있다. 회사 여직원도 산 것을 봤다. 그런데 남자 직원이 이 영화를 보고 온 후 욕하는 것도 봤다. 전혀 야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영화도 소설도 읽지 않은 나에게 단편적인 정보 밖에 없어 각각 다른 성의 감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190센티미터의 큰 키에 잘 생긴 외모를 가졌고, 마피아 가문의 수장이다 보니 자신의 재산들이 시칠리아 곳곳에 놓여 있고, 원하는 것을 사는 데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마시모를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화자이자 여주인공인 라우라는 바르샤바 호텔에서 일하다 거구의 남자 친구와 사귀지만 성 생활에 불만이 많아 자위로 그 열정을 삭혔다. 마시모는 죽을 뻔한 경험을 했는데 이때 한 여성에 대한 환상을 본다. 그 실체가 라우라다. 실물은 본 후 그녀를 납치한다. 365일 동안 자신과 머무르게 되면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만약 달아나면 그녀의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그녀의 남친이 다른 여자와 섹스하는 사진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머물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작은 밀땅과 자극적인 성 이야기와 지극히 럭셔리 물건에 대한 소비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름다운 로맨스는 자극적인 섹스로 바뀌고, 서로 탐닉하는 일이 벌어진다. 욕망에 솔직하지만 현실을 완전히 부정할 정도는 아니다. 육체적 끌림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는데 한 편의 야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이지만 욕망을 적나라하게 다루고, 명품에 대한 적극적인 소비를 보여주면서 여성들의 대리만족을 시키는 듯하다. 특히 자위하는 장면과 성교 장면에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역겨울 수 있는 상황이 나온다. 비현실적인 과정 때문이다. 한국 로맨스가 보여주는 빙빙 돌아가는 과정을 가감하게 삭제한 후 직진하는 방식을 취한다. 어쩌면 이런 장면들이 통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읽으면서 왜? 라는 물음을 여러 번 던졌다. 어떤 장면들이, 어떤 매력이 이 소설을 이렇게 뜨게 만들고 영화로 만들어져 큰 흥행에 성공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남자라서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여성들의 심리 속에 이런 환상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과 별개로 이야기는 간결하고 잘 읽힌다. 이것도 하나의 매력이다. 시리즈 다음 편이 올해 중에 나온다고 하는데 읽어야할지 잠시 고민해본다. 분명히 이번 로맨스는 내가 재밌게 읽었던 로맨스와는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