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리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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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기존의 뱀파이어 소설과 궤를 달리한다. 나에게 뱀파이어 소설하면 앤 라이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론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예외다.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에 한때 빠져서 정신없이 읽은 적이 있다. 장황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는 대단했다. 그런데 옥타비아 버틀러의 흡혈귀는 기존의 뱀파이어와 종이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스스로 ‘이나’라고 부르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 그들에게 물린다고 해서 뱀파이어로 변신하지 않는다. 다만 이나에게 물리면 강한 쾌락을 느끼고, 그들의 힘에 조정되는 문제가 있다. 작가는 이나와 인간들의 관계를 공생이라고 표현한다. 이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공생인이라 부르고, 상대방이 죽을 때 큰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이나와 공생인들은 무리를 이루고 산다.


쇼리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허기를 느낀다. 무엇인가가 나타나자 잡아먹는다.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피와 고기를 먹고 재생한다. 해를 보면 피부가 상한다. 밤에 동굴에서 나와 먹을 것을 사냥한다. 자신이 누군지, 불탄 집의 정체도 모른다. 그러다 도로를 걷다가 한 남자에게 발견되어 그의 차를 탄다. 그의 피를 마신다. 죽을 정도는 아니다. 그는 쇼리의 첫 번째 공생인이 되는 라이트다. 쇼리의 피부는 검고, 키는 150센티미터 정도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그녀는 라이트의 집으로 간다. 기억을 상실한 쇼리가 다시 세상을 만난다. 아직 자신이 정체와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피에 대한 갈증은 주변 사람들을 몰래 찾아가 마시면서 해결한다.


자신이 발견된 곳에서 기억을 더듬어 불탄 집을 찾아낸다. 그곳에서 다양한 냄새를 맡는다. 그녀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안다. 나중에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다. 아버지와의 만남은 짧게 이루어진다. 과거의 기억을 잃은 그녀에게 이나의 문화나 능력 등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몇 가지 간단한 정보를 얻지만 충분하지 않다. 다만 이나에게는 공생인들이 필요하다는 사실만 안다. 단 한 명의 공생인으로는 그들의 허기를 채울 수 없다. 성별에 상관없이 다수의 공생인과 함께 살아야 한다. 이야기 진행되다 보면 이 공생인들이 결혼하는 경우도 나온다. 재밌는 설정은 이나들이 영생을 살지 못하고, 기본의 흡혈귀처럼 햇볕에 약하다는 것이다. 낮에는 우리가 밤에 졸리는 것처럼 그들도 잠에 든다. 이것이 그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에게 좋은 먹이감이 된다.


쇼리가 다시 아버지의 집에 갔을 때 집은 불타고 아버지와 형제들은 죽었다. 아버지와 형제의 공생인이 각각 한 명씩 살아 남았다.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그 당시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이나에게 중독된 이들이 다른 이나와 공생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쇼리의 독은 강력해 이들이 쇼리의 공생인이 된다. 쉰세 살의 뱀파이어이지만 과거의 기억이 없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다. 그녀는 공생인의 도움을 받아 다른 이나를 찾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이나들이 잠들어 있는 낮 시간에 낯선 무리들의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쇼리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낮에도 돌아다닐 수 있고, 햇볕에도 어느 정도 저항이 가능하다. 인간과 이나의 경합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녀의 아버지가 이미 알려주었다.


작가는 화려한 액션이나 무시무시한 장면을 연출하기 보다 이나와 인간의 유전적 결합을 통해 태어난 쇼리의 존재를 두고. 인종 차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많은 이나들이 생각하기에 쇼리의 햇볕 저항력은 큰 축복이 분명하지만 아닌 이나들도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이런 사실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것을 두로 벌어지는 논쟁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떤 대목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나들은 성인이 되면 동성끼리 살아야 한다. 이성의 존재는 너무 강력한 유혹이라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여러 명이 함께 살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 이 소설에서 첫 공생인 라이트가 남성 공생인이 또 생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문화의 문제라는 사실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작가의 작품 중에서 흔치 않은 독립 작품이다. 미국의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 번역된 작품의 수가 너무 적다. 운 좋게도 이 작품까지 출간된 모든 작품을 읽었다. 어떤 작품들은 나의 이해를 넘어섰지만 가독성은 변함없이 좋고,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늘 매혹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와일드 시드>를 포함하고 있는 패터니스트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면 하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만약 작가가 이른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이번 작품도 시리즈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나라는 뱀파이어 종족이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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