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나무
아야세 마루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편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이 단편집은 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고교생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소개 때문에 선택했다. 이 선택은 모두 읽은 지금 작은 감탄으로 이어지고,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사람들의 신체를 분리시키고, 남녀의 시간대가 나누어져 있고, 물고기처럼 알을 낳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 이면에는 사랑이란 감정과 일상적 삶이 놓여 있지만 이 강렬한 세계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당연히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본다. 한 권 더 번역된 책이 있지만 역시 단편이다.


표제작 <치자나무>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지?’였다. 내연녀가 요구한다고 자신을 한 팔을 내어주는 남자보다 너무 쉽게 분리해서 주는 장면에 놀랐다. 이 세계에서는 이런 분리가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여자는 이 팔을 애지중지 가꾸는데 그 남자의 아내가 찾아온다. 남편의 팔이 사라졌으니 당연히 알지 않겠는가. 이 특이한 세계 속에 작가는 사랑이란 감정을, 그 흔적으로 좇는다. 이 단편의 놀람은 조금은 낯익은 설정의 <꽃벌레>로 이어진다. 운명의 상대에게서 꽃이 피는 것과 그 향기를 맡게 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페르몬과 이전에 벌레가 사랑의 감정을 조종한다는 소설을 읽었기에 낯설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 꽃과 향기의 정체를 알게 된 후에 벌어지는 상황은 또 다르다. 자신들의 사랑이 단지 벌레의 조종이란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사랑의 스커트>와 <가지와 여주>는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평범하지만 이 평범한 속에 담긴 작은 감정들의 표현이 좋다. 이 두 작품은 평범한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자가 자신의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어떻게든 그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는 모습이 시선을 끈다면, 후자는 새로운 시작을 바라지만 다른 상황의 두 남녀를 보여준다. 2-30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전자이고, 후자는 50대의 사랑 이야기다. 후자는 가지색 염색과 여주 요리를 뒤섞어 중년 이후의 삶을 조용히 그려내었는데 전자는 머리 커트와 스커트 제작이 이 관계를 이어준다. 작은 인연의 끈이 조용하게 떨린다. 담백한 표현으로 가득하지만 아련한 감정이 단편 속에서 꿈틀거린다. <얇은 천>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권태와 공허함을 느낀 중년 부인의 어린 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형 놀이를 다룬다. 남편의 막말과 아들의 막말 이면이 서로 다르다.


<짐승들>은 여자가 뱀으로 변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에 분노한 여자가 뱀으로 변해 그 남자를 먹는다. 이 격렬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남자들이 낮을, 여자들이 밤을 지배하는 세계이지만 서로 부부가 되어 살아간다. 여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남편을 통해 낮의 시간 이야기를 듣는다. 낮에 나타나 남자들을 공격하는 괴물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정체는 쉽게 알 수 있다. <산의 동창회>는 읽으면서 의인화한 동물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알을 낳고, 몇 번 낳고 나면 죽는다고 한다. 바닷가 마을이 배경이고, 바다에서는 이들을 잡아먹는 거대한 황금 지느러미가 있다. 무론 이들을 지켜주는 해수도 존재한다. 이 해수는 이들 중 일부가 변신한 것이다. 주인공은 다른 친구들처럼 알을 낳지도, 유모가 되지도, 해수로 변신하지도 않고 기록만 할 뿐이다. 이 기록하는 삶이 왠지 모르게 조용한 울림을 준다.


일곱 편 중 네 편이 판타지 소설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세계를 확장하지 않고, 축소해서 그 사회 속 사람들의 감정을 간결하게 풀어놓았을 뿐이다. 기이하고 묘하고 어떻게 보면 섬뜩한 세계다. 하지만 이 기괴한 세계를 지우고, 사람들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감정들이 보인다. 사랑, 질투, 그리움, 공허, 분노 등의 감정이다. 여기에 옆에 머물면서 죽음을 관찰하고, 그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한 편씩 천천히 읽었는데 어느 순간 단숨에 달렸다.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다. 뒤섞인 이야기와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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