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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S. K. 본 지음, 민지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평점 :
SF 스릴러란 설명에 혹했다. <마션>을 아직 읽지도, 영화를 보지도 않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다. <마션>같은 생존 스릴러란 소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질지 상상하게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나의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약간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각본가로 일한 경력이 이 소설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고립되고 멀고 홀로 남은 승무원의 힘겨운 귀환을 다루었을 것이란 기대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키지만 어느 순간 분위기가 바뀌면서 전체 이야기가 흔히 보는 할리우드 공식처럼 흘러갔다. 덕분에 가독성이나 재미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욕심이 너무 과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로 우주 탐사선 호킹 2호가 떠났다. 유로파에서 과학 실험을 진행하고, 그 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우주선이다. 이 우주선의 선장은 메리엄 녹스다. 그녀는 흑인에 여성이지만 탁월한 업적으로 심우주 탐사선의 선장이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메이의 어릴 때 사고 기억이다. 자신의 수영 실력을 뽐내다 연못에서 허우적거렸던 기억이다. 우주선의 흔들림에 그녀는 깨어난다. 현실로 돌아왔다. 다른 승무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주선의 인공지능이 그녀를 돕는다. 메이는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붙인다. 이브다. 만능일 것 같은 인공지능은 충분한 자료가 없고, 메이는 역기억상실에 걸렸다. 자신이 왜 병실에 누워 있었고,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우주선의 상태도 나쁘다. 살아 돌아가기 위해서는 나사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억상실과 우주공간에서의 생존이란 두 가지 키워드에, 그녀의 과거사가 끼어들고, 하나의 음모가 그 바탕을 이룬다. 폭주하는 우주선을 안정화시켜야 하고, 이 우주선을 지구로 돌려야 한다. 이렇게 적으면 쉬워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춥고 망막한 우주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주선에 난 작은 구멍 하나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면 죽는다. 멈춘 상태라면 이 구멍이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주선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다른 승무원들도 찾아야 한다. 우주선이 완전하게 기능한다면 이브가 전체를 스캔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고할 수 있지만 이브의 기능도 제한적이다. 어렵고 아주 힘든 상황이다.
이브가 나사에 그녀의 생존과 우주선의 상태를 알린다. 우주선 설계자 라지와 메이의 남편 스티븐 등이 이 사실을 알고 그녀의 귀환을 돕고자 한다.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주선에 이상이 생긴다. 쉽게 생각하면 인공지능의 해킹으로 문제를 만드는 것이지만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이 과정에 메이는 거의 죽음 직전까지 도달한다. 나사의 직원들은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스티븐의 분량이 늘어난다. 메이와 스티븐이 어떻게 만났고, 둘이 어떤 식으로 사랑을 쌓았는지, 그들 사이에 이혼 이야기가 오고 간 이유 등이 과거와 현재의 뒤섞인 구성 속에서 하나씩 펼쳐진다. 긴박함에 양념처럼 끼어든 로맨스는 뒤로 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과 이곳에서의 생존만 다루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을 텐데 작가는 여기에 음모와 뒤틀린 욕망과 새로운 과학기술을 뒤섞었다. 현실적인 기술 문제는 뒤로 밀리고, 스릴러와 액션이 앞으로 튀어나온다. 이야기에 가속도는 붙지만 전체적인 구성이나 사실성 등은 조금씩 힘을 잃어간다. 너무 많이 욱여넣은 느낌이다. 기대한 바와 다른 전개다. 물론 이런 식의 전개가 더 대중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본 장면들이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뒤섞고, 과거와 현재를 엮으면서 음모의 실체를 찾아낸다. 하지만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놓친 것일까? 취향을 많이 탈 SF 스릴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