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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스파이 2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평점 :
드디어 2권을 다 읽었다. 2권을 읽으면서 1권에서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많이 완화되었다. 핌이 자신을 3인칭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나 아들 톰에게는 평대를 하고, 상사였던 잭에게는 존대를 하는 장면의 전환에도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문 중 하나였던 왜 핌이 갑자기 정보국을 떠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인터넷 서점 책소개만 잘 읽어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늘 그렇듯이 뒤늦게 발견했다. 덕분에 소설을 더 재밌게 읽게 되었다. 천천히 음미하듯이, 그 상황을 그려내듯이 읽다 보면 예상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1권의 연속선상에서 핌은 계속 글을 쓰고, 잭은 핌의 흔적을 뒤쫓는다. 그의 아버지가 보궐선거에 출마하는데 이때 일어난 일들은 정치판을 조금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기꾼인 아버지가 지지자를 모으고, 승리를 위해 음모를 꾸미거나 거짓말을 하는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다. 자신이 저지른 사기 행각에 분노한 여성을 도와주는 핌과 이 상황을 아주 유능하게 넘어가는 장면은 이 소설 전체 구성과 이어져 있다. 양심과 허세의 세계가 충돌할 때 양심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증거와 그 증거를 제대로 알려줄 매체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SNS가 있다면 다른 문제이겠지만 그때는 그 통로가 일방적이었다.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장교로 입대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악셀을 만난다. 상대 국가의 스파이로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잘 설계된 접근이다. 본래의 의도를 살려 적국의 정보를 빼내려고 하지만 배신의 기억은 양심을 흔든다. 악셀이 느끼는 공포와 위험은 그를 배신자의 길로 이끈다. 양심의 짐을 덜어내지만 자신의 조국에는 또 빚이 쌓인다. 작가는 배신의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미국으로 넘어간 다음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비밀정보라고 넘긴 것이 다음 달 잡지에 실리는 일 같은 것이다. 긴박하고 은밀할 것 같은 첩보전을 살짝 뒤틀어 놓았다.
이 소설에서 아버지 릭은 실제 작가 아버지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 작가 후기에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놀랍게도 닮았다. 릭이 핌을 변호사로 만들려고 한 것은 그의 변호를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공한 작가에게 연락한 아버지의 모습도 겹쳐진다. 생활비를 주지만 결코 그 금액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닮았다. 실제 핌은 자신이 돌아다닌 곳에서 수없이 아버지를 만난다. 그 아버지는 돈을 구걸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에게 자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전히 단절하지 못한 관계는 이렇게 삶을 옭아맨다. 그의 떠남이 대립하는 두 진영에게 큰 혼란을 준 것은 다른 문제다.
또 다른 이야기 축인 잭 등의 이야기는 핌의 회고와 다른 면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핌의 기억과 현실의 괴리를 바로 잡아준다. 과거의 대화 속에서, 기억 속에서 현재 그가 있을 수도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냉전이 끝난 지금에서 보면 이들이 보여주는 대결이 크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지만 이 당시에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줘야만 했다. 실적이란 이름 아래 최말단에 있는 스파이나 정보원들은 잠시 사용되고 폐기되는 용도였다. 이 소설의 제목이 되는 완벽한 스파이도 악셀의 입에서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를 가지고 상대방 진영으로 넘어간 정보원은 내부 스파이들 목록을 내주는데 이것은 서로에게 큰 위험이고 일이다. 실제 이런 일들이 몇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작가의 소설은 나에게 쉽지 않다. 가끔 명성에 끌려 도전했다가 나와 맞지 않아 중단한 작가들이 생기는데 존 르 카레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이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작은 돌파구 하나를 발견한 것도 같은데 솔직히 다른 책을 읽어야만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이 칭찬을 솔직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 어쩌면 따라가기에 너무 급급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소설 내용이 뒤엉키고 모호한 부분들이 충돌하고 있는데 시간 나면 조용히 정리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머릿속에서 수도사가 되었다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하는 물음이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