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관한 증명
이와이 게이야 지음, 김영현 옮김, 임다정 감수 / 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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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수학이 어려워지면서 관심을 끊었다. 그렇다고 수학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시험 위주의 풀이에 질렸고,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수학 전공자 같지만 고등학교 때 이야기다. 솔직히 머릿속으로 산수도 잘 못한다. 이런 내가 뛰어난 수학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에 눈길을 주는 것은 어릴 때 좋아했던 과목 중 하나가 수학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수식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왜 영화 등에서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칠판 가득 암호 같은 수식을 적어 놓지 않는가. 이 소설도 그래서 선택했다.


수학자 두 명을 등장시켜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보여준다. 과거는 수학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료지의 시점이고, 현재는 그와 같이 특례입학을 한 구마자와의 시점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몇 가지 수학 증명에 대한 이론이나 학자 이름은 대부분 모른다. 수학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세계 3대 수학 난제가 있다는 것 정도다. 그 중에서 하나가 증명되었다고 들었다. 이런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따라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작가는 수식을 설명하기 보다 수학자들의 우정, 질투, 좌절, 열정, 바람 등을 멋진 묘사 속에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는 자와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의 대립을 놓아두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료지는 온통 수학만 생각하면서 산다. 다른 과목은 다 성적이 별로지만 수학 하나만은 최고다. 이 재능을 고등학교 수학교사가 알아주면서 대학교수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논문 한 편을 쓰고 특례 입학했다. 이때 같이 구마자와와 사나가 동기로 들어왔다. 이 둘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출신이다. 이 둘은 학교에서 수학 천재로 이름을 날렸을 테지만 료지와는 보는 세계가 다르다. 학창시절 담당교수의 지도 아래 료지가 이론 대부분을 쓰고 둘이 자료를 준비하면서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다. 그 분야에서 지금도 가장 많이 인용된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논문이다. 료지의 뛰어남은 그에게 조기졸업을 권유할 정도다. 그의 존재와 실력이 수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뒤흔든다.


료지의 재능과 열정에 질투와 선망의 감정을 가진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그를 대학에 데리고 온 고누마이고, 다른 한 명은 친구인 구마자와다. 고누마는 료지에 자극을 받아 교수직을 박차고 나가 국립수리과학연구소로 간다. 구마자와가 료지의 공책을 6년만에 다시 보면서 그 공책을 가지고 고누마에게 간다. 이 책의 도입부다. 콜라츠 추측 증명을 쓴 공책이다. 이 분야는 구마자와도 고누마도 전공이 아니다. 구마자와는 대학에서 부교수를 역임하는 중이다. 현재의 시간은 이 공책과 그 증명을 둘러싼 구마자와의 아쉬움, 고뇌, 열정 등을 보여준다. 그 사이 사이에 료지와의 만남과 그에 대해 가졌던 감정들이 파편처럼 드러난다. 결코 료지를 뛰어넘을 수 없어 다른 분야를 전공할 수밖에 없었고, 그가 선택한 교수의 영향 때문에, 현실의 무게 때문에, 그 순간의 뒤틀린 감정 때문에 가졌던 감정들이다. 그래서 그가 살짝 료지가 발을 내딛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수식들을 풀어낼 때 그 열정과 희열에 감동한다.


료지의 천재성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볼 수도 없다. 고누마 교수가 떠난 후 온 교수가 논문의 작은 바늘구멍을 옳음으로 지적하고, 자신과 함께 수학을 연구했던 사람들의 떠남으로 느낀 외로움이 조급증과 술로 그를 잠식한다. 술은 그에게 외로움을 잊고 자신의 이론을 더 잘 보게 만들지만 몸은 급격하게 망가진다. 그가 이전의 교수와 친구에게 작은 도움을 손길을 내밀지만 그들은 그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마자와가 자신이 료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마지막 기회도 그가 날렸기 때문이다. 수학 밖에 모르는 삶을 산 료지이기에 현실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쉽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 수학의 난제를 풀다가 미친 사람들 이야기가 이전에도 있었지 않은가.


이 글을 쓰면서 국제수학올림피아드를 검색하니 한국의 화려한 수상 이력들이 나온다. 하지만 누군가의 글처럼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은 한 명도 타지 못했다. 한국의 뛰어난 수학자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런 수학 천재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늘 드는 의문이다. 물론 료지의 천재성이 화려하게 포장된 부분이 있겠지만 그 천재를 바라보고 천천히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수학자들도 있다. 이 소설은 이 두 종류의 수학자를 나란히 보여주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오고 간다. 머릿속에 떠오른 수식을 풀어내기 위해 밤을 세우는 그들의 열정을 보면서 한때 내가 다른 것에 가졌던 열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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