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바르 언덕의 과부들
수자타 매시 지음, 한지원 옮김 / 딜라일라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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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인도 봄베이를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 소설이다. 거의 600쪽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인데 작가는 그 시대의 풍경과 문화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큰 공을 들인다.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인도의 풍경들을 묘사한 장면이 흥미롭고 재미 있을지 모르겠지만 추리 소설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초반 진행은 상당히 느린 편이다. 실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200쪽이 지난 후다. 그리고 감안해서 읽어야 할 것은 이 당시 인도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보다 훨씬 더 여성에게 위험하고 억압적이었다는 점이다. 몇 년 전 뉴스에 나온 기사들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더 쉽다.


소설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그것은 1921년 인도 봄베이에 여성 변호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는 여성 참정권이 겨우 서구에서 인정되고 있던 시대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유명한 프랑스는 이 당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시기를 감안하면 엄청난 일이다. 물론 이 여성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론은 하지 못한다. 사무 변호사로 서류 작업만 가능할 뿐이다. 이런 한계가 있지만 여성이 변호사란 점은 아주 놀라운 진보가 분명하다. 실재 있었던 두 명의 여성 변호사를 기초로 퍼빈 미스터리란 인물을 창조했다. 소설은 퍼빈이 겪어야만 했던 성차별과 문화적 억압 등을 엮어 상당히 재밌는 추리 소설을 만들었다.


법정에 가지 못하는 퍼빈은 아버지의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한다. 세 아내와 네 자녀를 두고 세상을 뜬 무슬림 부호 오마르 파리드의 상속 재산을 정리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세 아내가 자신들의 상속 재산 모두를 재단에 넘기겠다고 서명한 편지를 받는다. 뭔가 수상하다고 느낀 퍼빈은 과부들을 만나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고 한다. 이 여성들은 상중이라 남자들은 만날 수 없다. 가족 대리인인 파이살 무크리를 만나 세 과부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확인하려고 한다. 이 과부들은 세상사에 무지하고, 무크리가 주장하는 말에 속아넘어간 것 같다. 퍼빈이 과부들을 만나면서 서로에게 숨겨왔던 비밀들을 알게 된다. 퍼빈 때문에 자신의 계획이 틀어질 것을 두려워한 무크리는 퍼빈에게 욕하고 내쫓는다. 그리고 살인이 일어난다.


이야기는 1921년과 1916년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1921년은 퍼빈이 사무 변호사가 되어 말라바르 언덕의 과부들 상속을 다루고, 1916년은 그녀가 인도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할 때다. 그녀가 법을 공부하는 것을 남자들이나 교수들이 탐탁치 않게 느낀다. 자리에 이물질을 놓고, 시험을 보는 것도 방해한다. 봄베이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되려는 길은 험하다. 시험을 보려 하는데 만년필이 고장나 볼 수 없다. 시험지를 가방 안에 무심코 넣는데 교수가 부정행위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받은 차별에 화난 그녀는 자퇴를 외친다. 그리고 잘 생긴 한 남성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캘커타에서 온 신부감을 구하러 온 사이러스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여자 혼자 낯선 남성을 만나는 것은 음탕하다고 보는 시절임을 알려주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둘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진다.


과거는 1917년으로 넘어가 그녀가 결혼 후에 겪게 되는 문화적 충격을 보여준다. 그녀는 페르시아 계통의 조로아스터교 신도인 파르시인데 이 문화 속에 지금 기준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문화가 나온다. 생리하는 여성을 집안에서 격리시키는 일이다. 생리혈이 악신을 불러온다는 이유다. 그녀의 엄마도 한때 경험했다고 한다. 첫날밤을 치른 후 그녀가 지나가듯이 한 말 속에는 의미심장한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랑의 열정 속에서 놓친 것들이 일상에서 하나씩 드러난다. 그리고 왜 그가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는지, 그녀가 얻은 질병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알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종교와 문화가 어떤 식으로 그들의 삶 속에 작용하고 억압하는지, 그 이면 속에 인간의 욕망은 또 어떤 식으로 최악으로 달려가는지도 보여준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선택할 때 속도감 있는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했다. 중반까지 인도의 다양한 종교와 민족들의 문화 등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이슬람 여성들을 얼마나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대목이 나올 때는 더욱 답답했다. 파르시 문화가 나올 때는 또 어떤가. 하지만 이 섬세한 작업들에 익숙해지면서 그 문화적 종교적 차이에서 비롯한 문제들이 하나씩 재미를 주기 시작했다. 작가는 그 시대의 문화와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현실적인 사건을 만들어내고 해결한다. 그리고 런던에서 공부할 때 친구였던 앨리스와 그의 아버지 데이비드 경을 등장시켜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와 걱정도 같이 보여준다. 오랜만에 읽은 인도 소설이지만 여전히 낯설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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