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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남성작가 편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2 ㅣ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평점 :
2020년 초에 발간된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개정판이다. 먼저 여성작가 편에 글을 썼지만 실제로는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이 먼저다. 이번 개정판은 여성작가 편과 연도 등을 맞추면서 50년대 작가 손창섭을 빼고, 70년대와 80년대와 2000년대 작가들을 한 명씩 더 넣었다. 전체적인 작가 숫자는 개정전보다 2명이 더 늘었다. 인터넷 서점 소개글에 올라온 연대표를 보면 70년대와 80년대는 남성작가의 숫자가 많지만 90년대는 여성작가가 더 많다. 단순히 판매부수만 생각해도 90년대 이전과 이후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시대와 성별 작가를 나눈 표는 생각보다 흥미롭다.
이전 책에서 다룬 아홉 명의 작가를 여기서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약 내가 그 이후 이 작가들의 소설을 한두 권 정도 읽었다면 그 당시 감상과 지금의 것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읽은 책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세 명의 작가들도 내가 많이 읽은 작가들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낯익고, 나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들이라 어떤 시선으로 이들을 풀어낼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소설이 좋아 마구잡이로 읽었기에 체계도 없고, 재미를 쫓다보니 저자가 풀어낸 해석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바로 이 때문에 로쟈의 책을 읽는 것이지만.
아마도 <관촌수필>은 읽었을 것이다. 이문구의 다른 소설들은 확실히 기억나는데 이 대표작은 완전히 자신할 수 없다. 내 취향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 <매월당 김시습> 때문에 그 당시 읽었던 다른 작가들에 비해 더 많이 읽지 않았다. 이문열, 이청준, 박완서 등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진 예전 소설들이 다루고 있던 가족사와 전쟁 이후의 삶들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충청도 사투리를 잘 썼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홍성원의 <달과 칼>에서 사투리가 사라진 것을 지적한 글이 떠올랐다. 지방 출신인 나도 이제 예전 사투리를 잊고 있기에 저자의 말에 더 공감한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읽지 않았다.(역시 확실한지는 부정확하다) 김원일에게 빠진 때는 대학 입학하고 단편을 한 번 읽어볼까 하고 도서관을 둘러보다 제목에 끌려 읽은 <환멸을 찾아서>였다. 이전까지 단편 소설을 싫어하던 나를 단편집으로 끌어당긴 그 첫 책이다. 아마 그 뒤 한두 권 정도 더 읽었을 테지만 왠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작가들이나 장르소설을 읽는다고 더 이상 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의 대하장편소설을 보고 늘 하는 다짐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저자의 평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쟁 이후 한국 사회가 재건되는 과정을 상세히 재현하고 현대 한국의 기원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의 깊은 작품”이란 글이다. 살짝 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불태워본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읽을 때 재미가 없었다. 문체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 후 읽은 몇 편의 단편과 장편은 김훈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의 산문집은 예상외의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의 문체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현의 노래>나 <남한산성> 등을 사놓고 오래 묵혀두고 있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현의 노래>의 경우는 작년 내내 옆에 두고 그냥 지나갔다. 들었다 읽으려고 마음먹은 후 그만 둔 책도 있다. “비극에 대해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가한 부분은 앞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작년에 신작 한 권을 읽었는데 올해는 구작 한두 권은 읽어보고 싶다. 초기작에서 그의 문체를 다시 경험해보고 싶다.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칼의 노래>를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인데 아마도 올해 실현가능성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