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영지순례 - 기운과 풍광, 인생 순례자를 달래주는 영지 23곳
조용헌 지음, 구지회 그림 / 불광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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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양학자 조용헌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이전에 읽었던 그의 책들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내가 풍수지리나 사주명리학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하여도 그의 시선은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몇 권 읽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중단되었는데 어느 날 다른 곳에서 다시 그의 이름을 듣고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도 그 이름과 더불어 영지란 단어 덕분이다. 저자는 영지를 “말 그대로 신비하고 신령스러운 땅”이라고 말한다. 무협 마니아인 나에게 이 단어는 아주 낯익다. 어쩌면 영물이 더 익숙할지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풍수지리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듣고 보고 자란 나이기에, 코로나 19로 해외는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저자는 23곳의 영지를 3개 기운으로 구분했다. 신령, 치유, 구원 등이다. 신령의 땅은 낯선 곳이 많지만 치유의 땅은 최근에 관심을 두었거나 알게 된 곳들이다. 구원의 땅은 가본 곳이 한 곳 밖에 없지만 늘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마음으로 생각만 한 곳이 나와 반가웠다. 그리고 3개로 구분된 영지들은 기운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는데 읽을 때는 그렇게 강하게 느끼지 못했다. 아마 멋진 풍경을 담은 사진과 구지회의 그림과 재밌는 이야기들에 빠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목차를 다시 훑어보았고, 간략한 부제들로 인해 이 차이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신령의 땅에서 저자는 영발에 대해 자주 말한다. 계룡산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넘어가자. 그런데 장락산 통일교 본부와 보리산 오하산방은 아주 낯설다. 통일교와 기업인이란 이유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얼마나 사주와 풍수지리에 관심 많았는지 생각하면, 그와 그 후대들이 얼마나 많은 땅을 사 놓았는지 생각하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고 간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오대산을 새롭게 인식했다. 이전에는 그냥 이름 정도 알고 있는 산이었는데 오랜 기억 속 한국 선인들의 계파를 다시 떠올리며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체력이 된다면 다섯 곳 모두 둘러보고 싶다.


치유의 땅에서 두 곳은 최근에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한 곳은 며칠 전 이웃 블로그에서 본 서산 간월암이고, 다른 한 곳은 작년에 알게 된 철원 고석정이다. 이 두 곳 모두 풍경이 아주 멋있었는데 이미지와 실제 풍경의 간격이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다. 운길산 수종사의 경우 예전에 친구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간 듯한데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곳에서 공짜 차를 마셨고, 잘 쉬다 온 정도만 기억난다. 두물머리를 갈 때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 단서를 찾았으니 갈 수 있을 것 같다. 경주 문무대왕릉이 전국 최대 무당 굿터란 사실은 처음 들었는데 언젠가 다시 가면 그 기운을 한 번 느껴보고 싶다.


저자는 십승지를 치유의 땅으로 분류했는데 구원의 땅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피난과 구원은 다른 의미일까? 구원의 땅에서 가장 중요한 산은 지리산이다. 재밌는 대목은 한국 페미니즘의 시원이자 원형으로 삼신할머니를 꼽은 것이다. 두세 번 지리산에 갔지만 단순한 놀이 이상이 아니었기에, 역사 속 비극의 장소란 인식과 한때 유행이었던 지리산 종단의 이미지 때문에 저자가 풀어낸 당취란 존재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상당히 많은 이야기 속에 여러 번 당취를 녹여 내었는데 조선의 승려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전 시인의 글 속에서 만났던 선운사를 다시 만났다. 다른 감상과 이미지이지만 반가웠다.


이 글을 쓰면서 만약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내가 결혼 전이고 더 어렸다면 이 영지들을 몇 곳은 반드시 다녀왔을 텐데 하는 가정 때문이다. 차 몰고 가벼운 마음으로 두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 속 사진들이 주는 시원하고 새로운 이미지는 보는 나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든다. 다른 높이와 시각에서 본 사찰의 모습은 발로 걸어가서 만난 풍경과 너무 달랐다. 저자가 풀어낸 산세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히 나에겐 와 닿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나의 심안이 막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여주어도 보지 못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을 자주 다닌다면 대자연의 기운이 조금은 그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날씨가 풀리고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 가까운 곳 한 곳이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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