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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소설가 백민석이 러시아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적은 여행 산문집이다. 백민석의 소설을 읽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미지만 희미하게 남은 <목화밭 엽기전>이 다른 소설의 이미지를 모두 삼켜버렸다. 그 후 몇 권의 소설을 더 사고, 한두 권 정도 소설을 읽었지만 그 첫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다. 그 이미지를 이번 여행 산문집을 통해 조금이나마 희석시켜보려고 했는데 이 책을 모두 읽은 지금 그가 찍은 사진과 감상들이 조금씩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의 글에서 본 몇 개의 여행 감상은 여행 팟캐스트들에서 들었던 러시아 여행의 이미지를 새롭게 고쳐주는 역할까지 했다.
그가 지닌 러시아의 이미지는 독재와 냉전 시절 구축된 것들이다. 나 자신도 이 이미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 시절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소련은 악의 축이었다. 너무나도 분명했기에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소련이 무너진 후 자본주의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면서 일어난 수많은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나 소설 등을 읽었지만 쉽게 그 이미지는 무너지지 않았다. 어쩌면 인터넷에 떠도는 러시아 불곰 이미지가 그 자리를 대체했는지 모르겠다. 푸틴마저도 이 불곰 이미지와 같이 묶여 있다. 그런데 작가가 찍고, 만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대화를 한 러시아인들은 그 이미지를 쉽게 날려버린다.
목차에 나온 ‘혼자 하는 여행은 결국 마음과 함께 하게 된다.’란 문장이 먼저 마음을 끌어당겼다. 공감하는 문장이고, 나 자신도 경험한 것이다. 뒷모습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란 목차와 사진만 보면 ‘뭐지?’하는 생각이 들지만 글 속으로 들어가면 사진 속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나의 눈도 같이 간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한 후 사진을 찍고, 일정 거리를 두고 촬영했다는 글을 읽고 다시 사진을 쳐다본다. 망원렌즈로 당겨 찍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떤 사진은 돈을 주고 찍기도 했다는데 그 평범한 모습이 왠지 더 시선을 끈다.
영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러시아 여행은 분명 불편하다. 하지만 친절해도 너무 친절한 러시아 시민들의 참견은 이 불편함을 상당히 많이 지운 것 같다. 러시아어로 말을 내뱉고, 그를 새로운 곳으로 끌고 가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하지만 그가 겪은 시민들은 아주 친절했다. 표정 뒤에 숨겨진 친절함을 그는 여행 기간 중 아주 많이 경험했다. 물론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 나라의 문화를 잘 몰라 실수한 부분의 이야기는 혹시 그 나라를 여행할 독자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미술관에서 겉옷을 벗는 것이다. 그리고 몇 가지 여행 팁은 참고할 만하다.
푸시킨. 이 이름이 러시아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다른 사람의 글에서 읽었지만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시 이 이름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구 소련이 무너지면서 사라진 수많은 동상들을 떠올리면서 압도적인 1위의 동상이 푸시킨이라는 것과 레닌을 제외하면 대부분 문화 예술계 인물들 동상으로 가득하다는 글은 아주 인상적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이 늘 구부정하다고 했는데 다른 거대하고 영웅적은 모습의 동상과 크게 비교된다. 또 그가 둘러본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공연장의 풍경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소련의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버린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환상을 다루는데 나 자신도 조금은 가지고 있다. 이 열차를 타고 유럽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끔 듣고 읽었다. 개인적으로 기차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의 환상처럼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예전에 읽은 책의 이미지가 좋은 쪽으로 변했을 것이다. 러시아 정교에 대해 작가가 보고 느낀 감상은 피상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공산주의 본진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뛰어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도끼옹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의 소설이 전 세계 독자에게 끼친 영향 때문일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게임이란 것이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언제나처럼 이런 여행 산문집을 읽으면 그 곳을 돌아다녀보고 싶다. 이렇게 쌓인 가보고 싶은 나라와 도시가 얼마나 많은가.
표지 사진 속 아이들 옷차림을 ‘이례적일 만큼 후줄근’하다고 했는데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가 우리 주변에서 너무 이런 옷차림의 아이들을 많이 본 탓일까? 어쩌면 작가가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학생들과 비교한 탓인지도 모른다. 사진 속 아이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내린 옴스크의 변두리에서 만났다. 이 동네는 변두리 빈민가였다고 한다. 이런 시선은 지역의 문제일 수도, 그가 작은 범위에서 경험한 편향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찍은 수백 장의 인물 사진 중 미소를 담지 않은 유일한 사진이란 표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계속 마음에 걸린다. 작은 딴지를 하나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