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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읽으면서 자신에게 수없이 많이 묻게 되는 책이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하는 물음이다. 선택과 도덕적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이 소설을 잘 보여준다. 제목대로 한순간에 일어난 사고와 그 이후 각자의 선택이 가져온 후폭풍을 죽은 사람의 전지적 시점에서 자세히 다룬다. 그리고 아주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작가는 흥미진진하고, 잘 읽히는 전개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처음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잘 읽혔고, 그 이야기의 무게에 가슴이 무거웠고, 어느 순간에는 작은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혔다. 나의 사고실험과 이전까지 삶을 돌아보면 과연 내가 밥처럼 행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열여섯 고등학생 핀이 화자다. 그리고 그녀는 두 가족이 함께 스키 여행에서 사고로 죽었다. 두 가족은 핀과 엄마의 절친 캐런 이모 가족이다. 여기에 핀의 절친 모린과 클로이 언니의 남자 친구 벤스가 동행한다. 목적지에 잘 도착해 식사하러 가는 도중 차가 고장난 카일을 태운다. 하지만 가는 도중 동물을 피하려다 차가 가드레일을 박는다. 이 가드레일이 튼튼하게 차를 받쳐주었다면 작은 해프닝을 끝났을 테지만 캠핑카는 추락한다. 이때 핀이 바로 죽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들 주변에 머물면서 이들이 겪게 되는 상황을 위에서 내려다본다.
핀은 사고 이후 상황을 단순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죽은 딸의 옷과 신발을 벗겨 모에게 주는 것을 보고, 클로이 언니 커플이 함께 구조대를 찾아 떠나는 곳을 따라가면서 그들에게 일어난 상황을 보고, 가장 상대적으로 멀쩡한 엄마와 카일이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떠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본다. 그리고 캠핑카 안에 남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떠나거나 머문 사람들 모두 자산의 바람과 달리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이 생기고, 이 선택이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차분히 보여주면서 그들의 두려움이 허상이 아님을 알려준다.
선택은 언제나 일순위가 있다. 딸의 옷과 신발을 모에게 줄 때 절친 캐런 이모는 감정이 상했다. 클로이 커플이 눈 속을 헤매면서 거리가 멀어질 때 잠시 밴스가 주저했지만 앞으로 나아간 것도 두려움 때문이다. 카일이 헛눈을 밟아 빠졌을 때 살기 위해 그의 손을 놓으려고 한 엄마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밥이 오즈가 자신의 개에게 먼저 물을 먹이겠다고 욕심을 낸 것과 죽을지도 모르는 외부로 내몬 것은 어떤 것일까? 덩치는 아주 크지만 겨우 열세 살 정신지체가 있는 아이를 말이다. 위험을 느꼈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색할 때 방향도 반대로 알려줬다면.
“두려움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이 문장은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 상황과 선택에 대한 가장 간결한 답변이다. 이해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상황을 계속 용인해줄 수는 없다. 열여섯 모가 엄마가 구조를 요청하러 갈 때 자신이 받은 신발을 다시 준 것이나 책과 눈과 불을 이용해 물을 만든 것은 두려움에 먹히지 않고 최선의 상황을 만들고 유지하려고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밥과 그 가족은 어땠는가? 그들 가족은 뭉쳐있었지만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엄마가 눈으로 캠핑카를 막을 때 도와준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기절한 아빠를 제대로 돌본 것도 아니다.
인간관계는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작가는 이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넣고, 두려움과 마주한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을 보여준다. 단순히 이 선택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이후 이 일이 일으킨 여파를 다루면서 용서와 회복을 이야기한다. 여친을 버린 밴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카일의 손을 놓으려고 한 엄마가 어떻게 그를 피하는지, 병실에 남겨진 물품을 통해 핀의 엄마가 자신의 딸 모를 어떻게 돌보게 되었는지 등을 간결하지만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고마움을 알고 감사함을 전달할 때, 딸의 상실을 다시 알게 되는 그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이들은 조금씩 회복한다. 하지만 두려움이란 변명을 내세운 캐런 이모 가족은 다른 길로 간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순간 아주 멋진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