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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책 - 100개의 주제로 엮은 그림책 북큐레이션 북
제님 지음 / 헤르츠나인 / 2020년 11월
평점 :
제목대로 그림책에 대한 책이다. ‘100개의 주제로 엮은 그림책 북큐레이션 북’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2부부터다. 그림책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읽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로 큐레이션하는 것도 가능하다. 얼마 전 읽었던 일본 추리소설에서도 추리 소설 장르만 가지고 전시회를 여는 장면이 나왔다. 나눈다면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100개의 주제로 나누었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나누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소개글에 나온 15년간 기록한 1만여 권의 목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그림책뿐만 아니라 동화, 청소년책,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어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100개의 주제로 나누기 전 그림책 북큐레이션 현장을 다룬 도서관 이야기를 보면서 오랫동안 도서관에 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집에 있는 책 읽기도 벅차기에, 신간 읽기에 바빠, 사 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이 많아, 잊고 있던 공간이다. 예전에 한창 책을 빌려 읽을 때 그곳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공간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책 정보를 들고 달려가 열심히 검색하고 찾아 대출해 읽던 그 시절 말이다. 그때 얼마나 긴 목록을 만들면서 한 권씩 대출해 읽었던가. 그리고 오래 전 도서관에서 아이와 함께 부모들이 앉아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얼마나 훈훈하고 부러웠던가. 물론 늦은 밤 잠자리 들기 전 가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만 그 장면과는 다른 풍경이다. 한 번 데리고 가고 싶지만 이젠 코로나 19로 더 힘들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림책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게 그림책은 그렇게 흥미로운 분야가 아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관심을 가진 작가가 몇 명 있지만 딱 거기에 멈춰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들의 경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다룬 책에서 새로운 책 목록을 만들면서 책탑을 쌓아가지만 이 분야는 새로운 도전이다. 집에 있는 그림책들 대부분도 주변 사람들이 준 것이다 보니 전집류가 많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출판사의 그림책을 몇 권 사기도 했지만 내 책만큼은 아직 아니다. 나이에 맞지 않아, 아이가 흥미를 보이지 않아 그냥 꽂아두거나 읽을 생각이 없는 책들이 상당히 많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같은 책이라도 몇 번이나 읽어달라고 하지만 내가 관심을 둔 책은 한 번도 겨우 읽는다. 대표적인 책이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다. 다시 읽자고 했을 때 ‘읽었잖아’란 대답으로 그냥 책장 어딘가로 들어갔다.
나 자신이 체계적으로 책을 읽지 않다 보니 그림책도 중구난방으로 읽어준다. 주로 아내가 출판사별로 내놓은 책들이나 소파 위에 놓인 책을 읽는데 호기심의 정도에 따라 한 번 읽거나 연속해서 두 번 읽어주는 경우가 있다. 특별히 글자가 많지 않으면 두 번 읽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어떤 책은 생각보다 글이 많아 힘든 경우도 있다. 공룡사전을 들고 와 전부 읽어달라고 할 때는 정말 난감하다. 뭐 대충 몇 개 읽고 지나가지만. 어른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장난감 가지고 놀기를 더 좋아하기에 책을 내가 먼저 읽어주면 살짝 관심을 보여주는데 이것도 잠시일 뿐이다. 이때 도서관의 분위기라면 어떨까?
100개의 주제로 나누어진 책들을 천천히 읽다 보면 속도가 느려진다. 간단한 책 소개글들이 주제별로 묶여 있는데 표지와 작가들과 출판사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다 보면 예상한 시간보다 더딘 책읽기가 된다. 그냥 휙하고 읽고 지나갈 수 있지만 왠지 저자가 분류하고 소개하고 있는 책들이 나의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단숨에 끝까지 읽을 수는 없지만 차분하게 눈으로 읽고, 책장을 괜히 한 번 뒤져본다. 혹시 집에 그 책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전에 읽었던 책도 있는지 눈을 크게 뜬다. 생각보다 이 책에 소개된 책 중에 읽은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읽으려고 묵혀둔 책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다. 자신할 수 없는 마음이지만 작은 씨앗 하나를 가슴 속에 심어 놓았다. 그것은 그림책도 이제 더 많은 눈길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100개의 주제들을 읽으면서 내가 놓친 수많은 재미와 감동을 떠올렸다. 최근 더욱 한쪽으로 치우치는 독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시간 부족은 선택과 집중이란 문제에 부딪치고 그 선택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친다. 그렇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정도로 파고들지도 않는다. 욕심만 더 늘어나는 것일까? 저자가 풀어낸 매력적인 소개들이 이 욕심만 부채질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편협했던 시선을 바로 잡아준다. 특정 출판사나 그림에 혹했던 나를 더 넓게 보게 만들었다. 대충 눈길만 준 주제나 그림책에 좀더 시선을 오래 두게 한다. 그림책에서 이런 이야기도 다루나 하고 놀랐던 주제들도 많아 읽으면서 얼마나 놀랐던가. 나보다 더 자주 열심히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내에게 주고 참고하라고 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준 책은 거의 읽지 않지만 그림책을 아주 열심히 읽어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