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도들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토니와 수잔>을 흥미 있게 읽었기에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광신도들에 대한 관심도 있다. 원제인 “DISCIPLES”는 제자들 혹은 예수의 제자들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 단어를 광신도들로 번역하게 되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선입견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이야기 전체를 읽게 되면 광신도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실제 밀러 교회의 신도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우리가 흔히 아는 광신도와 조금 다르다. 물론 이 교회의 신자 중 한 명이 보여준 행동은 여타 종교의 광신도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한 종교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소설은 5부 31장에 8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은퇴한 과학사 교수 해리 필드이지만 이 소설을 정말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데이비드 레오와 닉 포스터 등이다. 해리 필드가 가짜 과학, 사이비 과학, 유사 과학을 주제로 강연할 원고를 쓰는 중 손녀의 친부인 올리버 퀸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올리버는 해리의 딸 주디를 임신시킨 후 도망간 인물이다. 출산 당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는데 자신의 딸 헤이즐을 밀러 교회에 데리고 가려고 왔다. 첫 문장이 “외손녀가 납치당하기 두 시간 전”이다. 친부지만 납치란 사실을 분명하게 알린다. 친부였기에 해리는 외손녀를 맡겼다.


다음 화자가 닉 포스터다. 닉은 정신지체아다. 누군가에게 의존적인 인물인데 올리버 퀸이 그를 데리고 밀러 교회에 간다. 헤이즐 납치 당시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장시간 이동 속에서 헤이즐을 돌보는 인물이다. 닉은 각 부마다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중요한 사건과 이어져 있다. 헤이즐의 납치, 올리버 퀸의 죽음, 데이비드 레오의 납치, 그리고 살의 등. 자신만의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가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의해 폭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해리의 교육과 연결되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세우지 못한 아이에게 누군가의 영향력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닉의 시각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영문과 교수이자 허영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이 데이비드 레오다. 그는 흑인이다. 피부색은 검은색보다는 갈색에 가깝다. 닉의 시선은 이 색 구분을 잘 보여준다. 주디에게 관심이 있고, 해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주디의 딸이 납치된 후 밀러 교회로 직접 찾아간 인물이 그다. 영웅심이란 표현이 나오고, 아이를 찾으러 가면서 나타나는 심리 묘사는 너무 솔직해 어색할 정도다. 그가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 순간은 늦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가 백인이 아니라는 정체성과도 관계있다. 그는 위험하지만 스릴 넘치는 모험을 겪는데 이 속에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깨닫는다.


가장 예상외의 퇴장은 올리버 퀸이다. 솔직히 목차를 유심하게 읽지 않아 그가 죽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그는 밀러는 만나지 못하고, 밀러의 제자인 루머의 말에 혹해 딸을 데리고 밀러의 농장에 갔다. 흑인인 데이비드를 죽이려고 하다 오히려 자신이 죽는다. 이 죽음은 납치 사건과 FBI의 개입이 불러올 파국을 염려한 루머의 결단이다. 소설 속에 루머가 화자로 등장하는 것은 딱 한 번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본 상황과 완전히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 이때 내가 루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의아했던 상황 몇 가지도 바로 이해되었다.


해리가 밀러와 인터뷰하는 장면은 과학사 교수의 욕심에서 비롯했다. 그가 밀러 농장까지 올 필요는 솔직히 없었다. 하지만 문답식으로 표현된 밀러의 논리는 흥미롭고, 솔깃한 부분들이 많다. ‘사후’에 대한 질문은 종교의 핵심인데 그는 시간이란 개념을 이용해 아주 능수능란하게 피해간다. 민감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살짝 피하면서 이어간다. 그리고 밀러가 화자로 등장하는 것도 딱 한 번인데 그의 각성과 듣는 소리를 닉이 듣는 소리와 연결하면 종교적 체험의 실체를 이해하게 된다. 광신도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금은 이해된다. 대화를 구분해 표현하지 않고 묵직하고 심리묘사가 대부분이라 가독성은 조금 떨어진다. 그러나 각 인물들의 내면과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우리의 내면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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