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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엮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부코스키의 소설을 생각보다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이 기억은 이 작가에 대한 호감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두 권의 에세이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두 권의 에세이를 들고 뭐부터 읽을까 고민하다, 두꺼운 책부터 읽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이 글 속에 나온다. 순간 순서를 잘못 정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 생각도 읽다가 그냥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말이다.
소설을 생각하고 읽은 탓인지 느낌이 너무 다르다. 아니면 그 사이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혼란스러운 작품들이 수없이 나왔다. 이런 점은 이제 읽기 시작한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존에 읽었던 에세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에세이는 너무 노골적이라 거부감이 생길 정도다. 한 편의 포르노 소설 같이 진행되는데 그를 잘 모르는 나에겐 ‘왜?’라는 의문 부호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이 에세이에 나오는 단어들은 직설적이다. 아주 직설적이다. 거침없이 단어를 사용한다. 완화된 문장이나 단어가 나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 거침없이 내뱉는다. 엄숙한 문학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경험일 것이다. 만약 이 서평에 그 단어들을 사용하면 꽤 많은 단어들이 잘릴 것이다. 술 먹고, 토하고, 경마에 빠지고, 음주 운전을 하는 등 그의 일상은 일반적 삶과 너무 다르다. 오래전 미키 루크가 주연한 <술고래>란 영화가 부코스키를 다룬 것이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뭐 그때 알았다고 해도 부코스키가 누군지 몰랐겠지만.
이 혼란스러운 이야기들 속에서 그의 문장과 글에 대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 이야기도 같이 나온다. 현대 문학가에 대한 그의 날 것 그대로의 평가는 잠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 속에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곳에서 그가 읽었던 작품들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단순한 주정뱅이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가 책을 낸 후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대목이 몇 곳에서 나오는데 낯선 모습이다. 그 당시 우리도 그랬을까? 말러에 대한 그의 애정은 곳곳에서 묻어나오고, 나의 머리는 그 음악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된다.
미국 문학가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샐린저처럼 숨어 살거나 아니면 바쁘게 돌면서 책 홍보를 하는 경우를 본다. 아마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부코스키는 그런 작가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의 경험과 삶을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풀어냈다. 또 곳곳에서 풍자와 비판을 내려놓지 않았다. “생각은 섹스보다 위험하다. 훌륭한 미국 시민은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문장을 보면 그것이 잘 드러난다. 내 생각에 대한 집착이 아직 많아서인지 생각보다 더 깊숙이 내 안으로 이 글들이 들어오지 못한 부분이 있다. 다시 나중에, 다시, 란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