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안도현의 시를 읽었다. 절필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기간이 4년이었던 모양이다. 그 후 다른 에세이 한 권을 즐겁게 읽은 적이 있다. 나에게 안도현은 시인보다 <연어>의 작가가 먼저다. 그의 시집을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지 목록을 뒤져보았지만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부분이 다른 시인들과 다른 점이다. 시인의 시보다 동화나 에세이에 더 친숙함을 느꼈다니 묘한 느낌이다. 그리고 최근 현대 시를 몇 권 읽으면서 조금 어려움을 겪은 탓인지 이번 시집은 상대적으로 쉽게 읽혔다. 어떤 시는 왠지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3부 <식물도감>의 한 대목이 이 시집의 제목이다. 식물도감이란 제목처럼 수많은 나무와 꽃들이 등장한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고 집중하면 흥미로운 시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타리꽃이 피었다 / 곧 개강이다 / 나는 망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마타리꽃이 뭐지? 하는 생각보다 개강과 망했다는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 시 이전에 <환한 사무실>에서 창의 안팎을 거꾸로 단 사연을 적은 시를 보고 또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웃음을 자아내는 시들이 상당히 자주 보여 즐거웠다.
<그릇>에서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그 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고 말할 때 이 고백이 나에게도 해당됨을 느낀다. <꽃밭의 경계>는 경계를 표시할 돌을 줍는 행위를 반성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읽혔는데 마지막엔 반전처럼 “경계를 그은 다음에 꽃밭 치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어라”는 말에 놀란다.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는 이 시집의 또 다른 매력이다. <군인이 집으로 돌아간다면>이란 시는 이 세상 평화에 대한 희망을 잘 보여준다. 군인들이 정말 집으로 돌아간다면, 전쟁이 사라진다면, 하고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이 시집에서 눈시울을 붉힌 시가 두 편 있다. 한 편은 <고모>고, 다른 한 편은 <임홍교 여사 약전>이다. <고모>가 다섯 고모의 삶을 시어로 요약한 것이라면 <임홍교 여사 약전>은 시인의 어머니의 삶을 약력처럼 적은 시다. 한 어머니의 삶을 간결하게 요약한 이 시에 왜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을까? 내 어머니의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면 어떨까?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요약된다는 것에 슬픔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그 시간의 흐름과 삶이 나의 기억과 합쳐져서 그런 것일까? 시인처럼 적을 정도로 내가 고모와 어머니의 삶을 모른다는 사실이 왠지 부끄럽다.
일상의 관찰과 사색을 통해 시어를 뽑아낸 시들을 보면서 그냥 무심코 지나친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시를 산문처럼 늘 다가가는 습관을 가진 나에게 이 시들은 집중하고 그려내고 상상하는 것만큼 문을 열어준다. 위에서 말한 마타리꽃이 어떻게 생긴 지 몰라도 그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그의 감성과 마음은 조용히 다가온다. 알면 더 좋을 테지만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언젠가 알게 되지 않을까. 올해가 가기 전 시집을 한 권 더 읽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