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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제1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최근 장르가 다시 세분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경향을 어떻게 봐야할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카카오페이지에서 주최한 장르문학들을 재밌게 읽었다. 그래서 이 작품도 기대하고 있었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 설정과 전개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좋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낯익은 설정은 그 유명한 <트루먼 쇼>의 변주다. 차이가 있다면 트루먼이 자신이 방송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반면 이 소설 속 액터들은 알고 있다는 점이다. 스노볼 속 액터들은 최근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미디어의 또 다른 변주인 셈이다.
영하 41도의 혹독한 추위가 일상인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이 추운 세계에서 인공적으로 날씨 조절이 가능한 도시가 있다. 바로 스노볼이다. 그런데 재밌는 설정은 이 스노볼에 사는 모두가 액터가 아니면 디렉터란 것이다. 디렉터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액터들의 영상을 편집해 방송에 내보낸다. 이 방송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스노볼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뿐이다. 스노볼 자체가 거대한 무대인 셈이다. 그리고 이 방송은 철저하게 한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채널 하나가 한 액터의 삶을 따라간다. 일정수의 시청자가 나오지 않으면 그 채널은 닫히고, 액터는 스노볼에서 나가야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많은 아이들은 스노볼을 동경한다. 액터를 꿈꾸거나 디렉터를 꿈꾼다. 주인공 전초밤은 디렉터를 꿈꾼다. 이 냉혹한 외부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발전기를 돌리는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전기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에너지다. 열여섯의 전초밤은 쌍둥이 오빠 온기와 함께 발전소로 매일 출근한다. 그러다 스노볼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조미류를 본다. 사람들은 그녀를 살인자처럼 보면서 무섭고 더러운 벌레 보듯이 한다. 우체국까지 가기 위해 차를 타는 것도 방해한다. 실제 그녀가 스노볼 액터일 때 아홉 명의 사람을 죽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방송으로 그녀의 살인을 봤지만 그것은 우리가 방송으로 보는 것처럼 가짜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는 현실이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은 아주 구식이다. 사람들이 일정 속도 이상을 계속 걸어야 한다. 이런 일상이 반복된다. 그러다 조미류를 정거장에서 쓰러진 것을 발견한다. 차는 이미 지나갔다. 병원은 발전소에 있다. 전초밤에 스키로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간다. 중간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다. 무사히 도착해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녀를 찾아온다. 차설 디렉터다. 그녀는 고해리 담당 디렉터다. 고해리는 대단히 인기 있는 액터고, 다음 연도 기상캐스터로 발탁되었다. 실제 이 기상캐스터가 하는 일은 현재의 로또 추첨처럼 내일 날씨를 추첨해서 알려주는 일이지만 인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차설이 온 이유는 고해리가 자살했기 때문이다. 전초밤과 고해리는 아주 닮았다. 차설 디렉터가 바라는 것은 전초밤이 고해리 역할을 맡는 것이다. 1년 동안 고해리 역할을 하고 나면 전초밤이 바라는 디렉터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하면서 거래한다. 당연히 고해리는 1년 뒤 스노볼을 떠난다는 설정이다. 이렇게 스노볼에 들어간 초밤은 밖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을 마주한다. 날씨부터 모든 환경이 밖과는 너무 다르다. 그리고 늘 방송에서 보던 고해리 역할을 맡아 잘 해낸다. 그 과정 속에 이상한 경험도 하고, 살짝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들을 알게 되고, 고민하고, 결정한다. 반전은 이때 일어난다.
세부적인 설정들은 굉장히 낯익다. 위에서 말했듯이 <트루먼 쇼>나 1인 방송 등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닮을 꼴을 다른 역에 이용한다는 것은 몇 년 전 영화 <광해>나 <왕자와 거지>란 소설로 익숙하다. 핵으로 겨울을 맞이한 인류가 생존을 위해 만든 공간이 이본 미디어그룹이란 설정은 아주 독특하다. 그리고 이번 소설은 왠지 모르게 거대한 이야기의 도입부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초밤이 겪었던 몇 가지 경험들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본회와의 관계도. 시리즈로 발전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