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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악플, 특기는 막말 ㅣ 생각학교 클클문고
김이환 외 지음 / 생각학교 / 2020년 10월
평점 :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들이 쓴 단편집이다. 놀랍게도 조영주와 차무진은 집에 책은 있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작가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기대를 하고 읽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집은 왕따, 혐오표현, 언어폭력 등을 다루는데 기존 작가들에게 익숙한 장르를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스릴러, 추리, 판타지, sf 장르 등이다. 역시 좋아하는 장르들이다. 분량도 그렇게 부담되는 양이 아니라 집중하면 금방 읽을 수 있다. 늘 그렇듯이 당연히 읽으면서 나의 언어습관을 잠시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조영주의 <하늘과 바람과 벌과 복수>는 제목부터 윤동주의 시를 떠올린다. 무대 중 한 곳도 동주서점이다. 하지만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언어폭력과 왕따다. 이 일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가 어린 나이에 문학상 수상으로 이름을 알린 해환의 과거와 트라마우 탈피와 복수를 잔잔한 소품으로 풀어낸다.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풀어내었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당시 친구 희선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은 긴장감과 함께 약간의 허탈함을 던져준다. 강렬함은 부족하지만 언어폭력과 왕따의 트라우마에 대한 묘사는 인상적이다.
정해연의 <리플>은 읽으면서 악플을 단 사람이 누군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악플을 단 사람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실패한 탐정의 활동을 보는 것 같다. 재혁이 단정한 범인을 만나 일어나는 사건은 우발적인 일이다. 그 이후 재혁의 삶이 무너지는데 이 소설의 진짜 결말은 악플의 범인이 평생 안고 가야할 죄책감을 다룬 부분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 이외의 곳을 낮춰 말하는 습관이 불러온 비극인데 읽으면서 나의 나쁜 언어습관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지적으로 그 순간 고쳤지만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그 말들이 부끄럽다.
정명섭의 <말을 먹는 귀신>은 고등학생 성혁의 막말이 불러온 비극을 귀신과 엮었다. 다문화가정 친구를 심하게 놀렸는데 이 친구가 3층에 뛰어내리면서 문제가 커진다. 그의 행위를 재밌게 쳐다본 친구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은행 지점장인 아빠는 명퇴에 몰린다. 외삼촌의 음식점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다. 소위 신상 털기를 당해 그 피해가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로 퍼졌다. 이 순간이 되어서야 성혁은 자신의 잘못이 얼마나 큰 문제를 불어왔는지 인식한다. 그리고 무당 할머니를 통해 귀신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개인적으로 마무리에 아쉬움이 생긴다.
김이환의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은 SF형식을 빌려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내었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별에서 나온 편리가 겪게 되는 몇 시간의 낯선 문화 체험이 처음에는 약간 어지럽게 다가왔지만 읽으면서 하나씩 그 실타래가 풀렸다. 편리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하고 싶은 말을 패드에 쓴 후 보여주다 관료적인 행위에 폭발해 말을 내뱉은 후 사람들의 반응이 왠지 강한 인상을 준다. 말싸움이 일상적인 시티에서 감정이 상했을 때 기다리는 시간을 하프 타임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서로가 막말을 할 때 해당된다. 현실에서 이런 상황의 적용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차무진의 <햄릿이 사라진 세상>은 서기 2196년을 배경으로 한다. 세상은 언어로 소통하지 않고 사물의 소리로 자신의 뜻을 표현한다. 인류가 말을 죄악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이 세상은 모든 곳에 말을 내뱉는 것을 감시하는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다. 작가의 기발하지만 불편한 의성어들은 읽은 동안 약간 힘들었다. 뭔 말인지 바로 해석이 되지 않은 탓이다. 완벽한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인데 이 세상을 뒤집으려는 무리가 있다. 이들이 시도하는 방법은 셰익스피어의 다섯 희곡이다. SF 소품으로 시작해 예상하지 못한 설정을 마주한다. 마무리는 더 예상 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