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가끔 자주 눈에 띄고, 많은 책이 있어 읽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요가와 요코가 그런 경우다. 한참 책을 모을 때, 대할인시대에 작가의 책들을 사놓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자주 눈에 들어왔다. 아내에게 권하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작가의 책 정보가 올라와 최소 한두 작품 정도는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낯익은 제목과 표지는 눈에 들어오지만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응? 쌓인 책이 많아지면서 옛날 책들을 한 권씩 꺼내 읽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런 배경은 모른 채 오가와 요코의 소설을 처음 읽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할 때 작가 이름과 박물관과 연쇄살인이란 단어들이 나를 유혹했다. 죽은 자들의 유품만을 모아두는 박물관이란 점이 낯설게 다가왔지만 큰 박물관 대부분의 전시물들이 대부분 죽은 자들이 남긴 작품들이 아닌가. 하지만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이 유품들이 어떻게 모였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 하나씩 드러난다. 그리고 죽은 자의 유품들은 전부 훔친 것들이다. 박물관에 취직한 기사는 마을에서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 오면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훔치러 가야만 한다. 박물관 기사는 전시물품을 수집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이유다.
이 소설 속 작은 마을에 대한 정보는 정말 몇 가지 설명을 제외하면 없다. 위치도, 규모도,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에게조차 작가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박물관 기사는 기사로 불리고, 박물관을 새롭게 개관하려는 노파는 노파로, 그 수양딸은 소녀로, 대저택을 관리하는 부부는 각각 일에 따라 정원사와 가정부로 불린다. 연쇄살인으로 죽게 되는 여자들도 그들의 직업에 여자란 단어를 붙였다. 이 모호함과 부정확함은 끝까지 유지된다. 하지만 이것을 어느 순간 인식한다고 해도 책을 완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실제 우리도 이름을 모를 때 그 사람이 하는 일로 부르지 않는가. 이것과 침묵의 수행자들은 또 어떻게 이어질까?
이 마을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닫힌 세계가 느껴진다. 기사가 형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은 없고, 아마추어 야구장에서 경기를 보지만 이때 나온 두 팀 외에는 다른 팀 설명이 없다. 어느 순간에는 이 모든 상황이 하나의 연극 무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형의 답장이 오지 않을 때는 형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태어날 조카를 위한 선물을 사러 갔다가 폭탄 테러를 당하는데 이 장면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기사가 마을 중앙에 있던 침묵의 전도사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 입고 있던 옷을 벗겨내어 박물관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첫 도둑질의 떨림과 달리 이제 그는 이 일에 적응하고, 자신이 만들어가는 박물관에 빠져든 것이다.
작가는 이 최소한의 설명으로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박물관 개관을 위해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이 일상에 작은 변주를 주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날 때 혹시 하는 의문은 곧바로 확신으로 바뀐다. 처음 기대했던 미스터리는 약하지만 고요하지만 각자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의 일상이 인상적이다. “침묵은 바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죠.”란 문장은 이 마을 분위기와 상황들에 잘 맞는다. 침묵이란 단어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고 되뇌어본다. 그런데 그의 형은 살아 있기는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