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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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의 책 표지를 보고 반했다. 그래서 사 놓고 묵혀두고 있었다. 요즘 BTS 때문에 인기 역주행하던데 아내가 먼저 읽었다. 잘 읽힌다고 한다. 아직 내가 읽지 않아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아몬드>가 중학생 필독서 중 한 권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언제 읽지? 그러다 이 책을 먼저 읽기로 했다. 작가의 첫 번째 연애소설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실 손원평의 소설은 이전까지 단편 딱 한 편만 읽었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기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마 올해 이 작가의 작품을 한두 권 정도 더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애소설과 작가 이름을 빼고는 특별한 사전 정보를 가지지 않고 읽었다. 네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란 것도 몰랐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두 남녀 예전과 도원이 만남과 썸을 보고 이 둘의 연애를 다루나 생각했다. 하지만 새롭게 두 인물, 호계와 재인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예상을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래 사랑 이야기가 예상한대로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작가는 여기에 과거의 인연을 집어넣고, 엇갈리는 감정과 그들 각자의 삶을 함축적으로 풀어내면서 이야기에 깊이와 질감을 더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 속에는 거친 감정의 표출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 감정을 강조하듯이 표현하면 너무 감상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를 두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예진의 과거 프리즘 기억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다시 예진의 이야기와 프리즘으로 마무리된다. 이 사이에 네 남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썸과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만남.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고, 자신도 몰랐던 감정을 깨닫고, 질투에 빠져 실수를 저지르는 평범한 사랑이 나온다. 이들의 사랑을 엿보고 있으면 나의 과거가 잠깐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다루기에 어딘가에서 접점이 하나 정도는 있다. 그렇다고 그 감정에 매몰될 정도는 아니다. 작가는 그 간격을 잘 지킨다. 소설 속 사랑의 감정을, 실연을 구구절절 표현하지 않고 거리를 둔 것은 독자 개인 경험으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아내의 말대로 잘 읽힌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네 남녀들의 가벼운 사랑 이야기로 다가온다. 하지만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면 잔잔한 감정들이 다가온다. 잡지에 4계절이 지나면서 연재한 내용이다 보니 그 시간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멀리서 들여다보게 한다. 그 간격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성숙의 시간이다. 친하기에 속내를 드러내었고, 자신이 좋아하기에 그 속내를 이야기했고, 질투의 감정이 이 속내를 파국으로 이끈다. 하지만 이 파국은 도원의 말처럼 불안감과 완벽함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했다. 타인의 말을 차분히 들으려는 노력이 없었기에, 자신의 의견을 절실하게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생긴 파국이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사랑이, 관계가 만들어진다.


작가 후기에 이 네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황재인, 이호계, 백도원, 전예진 등이다. 소설 속에서 한 번도 성과 함께 불린 적이 없는데 이렇게 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다른 나이 대, 다른 성별, 다른 경험들이 뒤섞이고 꼬여 만들어내는 사랑이지만 그 감정은 순수하다.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만남, 또 다른 일상 등이 조용히 가슴 한 편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연재본과 출간본 사이에 일어난 코로나19를 두고 고민한 글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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