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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평점 :
작년에 나온 <루팡의 딸>로 요코제키 다이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재회>가 있었다. 그때의 서평을 찾아보니 “화려한 연출을 부리지 않고 견실하게 이야기를 만든다”고 쓴 글이 보인다. 아마도 루팡이란 단어 때문에 이 작품에서도 화려한 사건 사고 등을 예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1988년이란 시대적 배경으로 그 시대 여성들의 일상을 차분히 풀어낸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그때나 지금의 염원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여성들에게 오늘 새롭게 시작된 헤이세이라는 세상은 어떤 시대가 될까?”
소설은 두 여성의 시점으로 먼저 진행된다. 대기업 도하츠 자동차 홍보부서에서 일하는 삼십대 중반의 히무라 마유미와 간호사로 일하다 의사와 결혼해 전업주부가 된 진노 유카리 등이다. 마유미는 결혼을 바라지만 자신의 눈에 차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선을 봐도 마찬가지다. 이런 그녀에게 과거 학교 선배와의 만남은 새로운 기회가 된다. 바로 진노 도모아키다. 그를 만나게 된 계기는 사내홍보를 위해 회사 선수를 만나러 간 곳에서 야구 공에 맞았기 때문이다. 도모아키에 대해 나쁜 기억이 있다. 자기를 잘 따르던 후배가 그에게 강간당한 후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그런데 도모아키는 다른 말을 한다. 그녀의 유혹이었다고. 의사와의 결혼을 바라는 그녀에게 과거의 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유카리는 부유한 집안의 며느리로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시아버지도 의사고, 남편도 의사다. 시어머니와 점심을 같이 먹는다. 약간의 트집이 있지만 평범한 가정의 풍경이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1일분에 5천 엔이나 하는 고급 초밥을 한 달에 몇 번이나 사먹는다. 늦게 들어온 남편은 그 초밥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런 풍요함 속에 남편과의 부부관계는 몇 개월 째 없다. 연애시절 그의 성욕을 생각하면 분명 딴 여자가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손자가 생기지 않자 유명한 신사에 임신을 기원하러 가자고 한다.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가 답답하다. 이런 그녀에게 남편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다마나 미도리는 좋은 이웃이 된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인식한다.
소설의 첫 장면은 바다에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녀가 진노 유카리라고 말한다. 이 정보가 나온 후 왜 그녀가 그곳에서 죽었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설정이다. 두 여성의 일상이 나온 후 시체가 발견되고, 이 시체를 둘러싼 사람들과 형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왜 이 시체를 진노 유카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왜 그녀가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작가는 과거의 인물을 한 명 더 등장시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읽다 보면 그녀의 죽음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시체의 정체를 알게 된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인물과 죽은 자의 과거가 이 상황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든다. 거짓말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진짜 진실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또아리를 튼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 가지 가정을 세우고, 그들의 사연을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늘어난다. 그 시대와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은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데 작은 장애가 된다. 어쩌면 한국 남성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유미의 삶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의 욕심은 이해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뭐 삶이 언제나 이해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이 소설에서 자살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는 대목이 나올 때, 마지막 장면을 볼 때 두 여성의 삶이 긴 여운을 남긴다. 그녀들의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제 이 작가 이름을 제대로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