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정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쓰네카와 고타로의 소설을 읽었다. 이제는 대부분 절판되었지만 한때는 ‘노블마인’에서 이 작가의 작품이 몇 권 나왔었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잘 다룬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환상의 공간으로 들어간 스즈가미 세이치와 현실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첫 도입부가 약간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착각이었다. 현실에서 비현실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도 단숨에 이루어지고,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도 처음에는 밋밋해 보인다. 그러다 그에게 전달되는 편지를 통해 현실의 정보가 조금씩 전달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세이치는 마음에 든 여자를 따라 전철에 내렸고, 그곳은 현실의 세계가 아니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의 직장은 좋은 회사가 아니었고, 아내도 마찬가지도 좋은 배우자가 아니었다. 회사는 폭력과 폭언과 야근이 이어졌고, 아내는 호스트바를 들락거린다. 일상의 힘겨움과 잠깐의 끌림과 전철에 놓고 내린 가방 등이 엮이면서 그는 낯선 곳에 도착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고 상냥하다. 잘 곳 없는 그를 재워주고, 먹을 것도 공짜로 준다. 마녀가 살던 집에서 살라고 하고, 닭산에 가서 주은 것을 가져오면 돈을 준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는 금덩이 등의 보석과 돈이 되는 광물을 가지고 온다. 돈이 쌓인다. 이 마을에서 그는 도쿄로 가려고 하지만 누구도 그곳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놀라운 정보를 가진 편지가 오고, 나중에는 사람까지 찾아온다.


편지는 그가 현실에서 어떤 상황인지 알려준다. 지구를 덮은 거대한 해파리 같은 물체의 한가운데 그가 있다고. 지구는 푸니라고 불리는 물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다고.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다. 실제 지구에서 그의 영역으로 들어온 사람이 이 사실을 확인해주고, 핵을 파괴하자고 말한다. 어느 순간 이 마을이 편해지고, 결혼하고 애까지 낳은 그에게 이런 말은 거짓말처럼 다가온다. 그를 죽인다. 이 마을을 찾아오는 마물로 생각한다. 이 마물 퇴치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마물을 물리치는 장면도 나온다. 특별히 긴장감을 고조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현실이 드러난다.


세이치가 평온한 일상을 누릴 때 지구는 푸니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푸니에 대한 내성은 등급별로 나누어지는데 낮은 등급은 근처만 가도 죽는다. 이 푸니를 죽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불이다. 그런데 불 붙은 푸니가 움직이면서 화재를 발생시킨다. 한 도시의 삼분의 일이 탈 정도다. 이후 두 명의 새로운 등장인물을 등장시켜 이 푸니를 둘러싼 이야기를 펼친다. 한 명은 푸니가 나타나기 전 출생자고, 다른 한 명은 그 이후 출생자다. 이 둘의 푸니 내성치는 최고 수준이다. 푸니를 먹거나 먹힌 사람들이나 동물들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푸니화된다. 푸니의 이동 등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조직도 생기고, 푸니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자도 등장한다. 멸망의 세계는 새로운 인물과 조직을 필요로 한다.


현실의 위험성을 보여주면서 세이치의 세계에 대한 설명은 줄어든다. 푸니를 관리하기 위한 기구나 법 등이 생기지만 악의는 이것을 이용한다. 푸니를 먹이면 죽으니 이보다 좋은 독약이 없다. 사회 곳곳에서 이런 일이 생기지만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악의적인 장난으로 동창에게 푸니를 먹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 일이 역효과를 불러오긴 하지만 인간의 악의와 뒤틀린 감성 등은 이런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지구를 구하기 위한 사람들도 있다. 바로 돌입자들이다. 세이치가 만난 사람도 돌입자였다. 마을에 나타난 마물도 돌입자였다. 다른 두 세계, 다른 두 현실이 묘한 느낌을 전달한다. 실제 현실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인종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가독성이 역시 좋다. 판타지이지만 현실에 대한 은유와 비판이 곳곳에 심어져 있다. 지구가 멸망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고,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세이치의 공간 속으로 돌입한다. 이 설정은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른 환경을 경험한 두 사람의 기억이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공존이 불가능하다면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을 수행하기 위한 돌입대의 대장으로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로봇을 설정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멸망과 절망, 삶의 의지와 생존의 어려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등이 엮이고 꼬이면서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재밌다.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