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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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도시를 많이 걸어다녔다. 특히 종로와 광화문 거리의 서점들을 오고 가면서 어느 정도 거리는 걸었다. 이런 나의 걷기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자동차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뉴욕에서 남친과 헤어진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자동차다. 편리한 자동차 이용은 나에게 많은 문제를 불러왔다. 체력 저하, 비만 같은 육체적 문제와 함께 시야가 좁아지고 조급해지는 정신적 문제까지. 물론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여성이 거리를 걷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몇몇 도시를 통해 보여준다. 대부분 파리이고, 뉴욕과 런던과 도쿄가 같이 나온다.


플라뇌르. 도시를 걸으면 관찰하고 느끼고 사유하는 사람의 프랑스어 남성 명사다. 이 단어를 여성형으로 스스로 바꾼 단어가 플라뇌즈다. 우리는 흔히 남성의 언어로만 표현된 수많은 단어들을 만난다. 실제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가 남성 명사인 것은 그 시절에 여성들은 도시를 쉽게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는 의미다. 이 책의 부제로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란 문장이 들어간 것도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 문장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파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옛 도시이고, 저자가 성인이 된 후 오랜 기간 산 곳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진 리스와 조르주 상드와 아녜스 바르다 등이 살았고, 그들의 삶을 기록한 곳이다. 저자는 이들의 글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곳곳에서 찾아낸다. 지금처럼 평범하게 안전하게 걸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지금처럼’이란 단어를 앞에서 사용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많은 여성들이 말한다. 그러니 혁명의 시대에는 어떻겠는가. 세계적인 거장들도 페미니즘 초기에 반감을 보였다는 부분은 그 시절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런던 블룸스버리 이야기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나온다. 무심코 지나간 문장들에서 저자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문장을 걸러내어 이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단순히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고 자신이 직접 걷고 보고 느낀 점을 풀어놓았다. 이 감상은 파리에서 더 잘 표현되고, 도쿄에서는 강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동네 카페 숫자와 상점 사람들과 이웃이 된 파리와 달리 도쿄는 그렇게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녀가 그려내는 도쿄의 풍경은 내가 알고 있던 곳과 상당히 다르다. 출발부터 좋아하지 않은 도시와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까지 겹치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녀가 뉴욕에서 온 것을 생각하면 의외다. 이 솔직한 감상이 조금 불편하지만 서울을 경험한다면 어떤 감상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리베카 솔릿의 <걷기의 인문학>을 아직 읽지 않았다. 걷기의 역사와 의미를 총망라한 책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관심이 더 생긴다. 공공장소와 여성의 걷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나에게 이번 책은 다른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 나의 도시 걷기와 다른 걷기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자신이 머문 도시의 삶과 걷기를 여성 예술가와 엮어 표현한 이 책은 솔직히 재빠르게 읽히지는 않는다. 더디지만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읽다보면 우리가 놓친 것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자 분석이다. 어떻게 보면 여행기이기도 하다. 낯익은 유명 인사들의 낯선 이야기는 이 책의 부가적인 즐거움이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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