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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평점 :
화려한 표지가 먼저 시선을 끌었고, 지하 도시, 핵폐기물 처리시설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선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자연 작가 로버트 맥팔레인이 6년간의 집필로 완성한 이야기는 나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나의 예상은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둘러싼 문제들에 집중해 사회 문제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문제점보다 현실을 보여주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지만 이 부분을 파고들어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내가 놓친 것일까?
화려한 표지와 달리 책 속의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인터넷 서점의 사진을 보고, 그 이미지가 명확해진 것도 있다. 참고 자료에 대한 정보를 책속에 표기해 놓았는데 인터넷주소를 그대로 치기도 쉽지 않다. QR코드를 넣어두었다면 좀더 쉽게 찾아보지 않았을까? 점점 게을러지는 나의 모습이 반영된 표현이다. 이런 책의 인상과 달리 내용은 놀라운 점들이 상당히 많다.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너무 많아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고, 이미지 형성에 많은 부분 실패했다. 자료를 찾아가면서 읽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우리가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세 실무 그룹이 인류세를 현재의 지질시대로 정식 채택하도록 권고했다’고 말하고, ‘그 시작점을 핵 시대가 도래한 1950년’이라고 한다. 이 인류세란 단어를 다른 책 속에서 이미 봤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 단어는 지구온난화와 연결된다.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노출된 순록 사체에서 탄저균 포자가 방출되었고, 동시베리아 숲에서는 수만 그루의 나무가 사라졌다. 그린란드 북서부에서는 만년설 아래 봉인했던 냉전 시대 미군 미사일 기지가 노출되었고 유독성 화학물질이 같이 폐기되어 있다. 이런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 문제점을 더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지구온난화란 문제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까?
언더랜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숲 속 나무 아래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균근성 곰팡이가 숲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파리 지하 속 도시 이야기다. 카타콤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부분은 일부였다. 이 땅속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다. 마지막은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일들이다. 전통적인 사냥은 힘들어졌지만 이 땅의 지하자원을 노린 자본이 녹은 대지를 파헤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지하 공간에서 현재의 사하라 같은 모래의 흔적이 있다고 하니 상상력이 꿈틀거린다. 수십 수백만 년 전 지구에서는 어떤 일이, 어떤 문화가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의 가장 대단한 점은 이 모든 공간을 저자가 직접 경험했다는 점이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그 공간을 가게 되었는지 알려줄 때 어떤 곳은 그 위험성이 그대로 느껴질 때도 있다. 안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해도 작은 사고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개발 이야기 속에 자본의 논리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 부분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얼마나 많은 기계들이 땅 속에 그냥 폐기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핵 폐기물을 보관하기 위한 시설도 읽다 보면 상상력이 발동한다. 만약 이것이 폭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재밌는 부분은 이 보관소를 먼 후손들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기호 등에 대한 논의다. SF작가까지 이 작업에 참여했다.
이 책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수많은 문학 작품의 인용이다. 낯익은 작가와 작품도 있지만 낯선 것도 많다. 다른 문화의 환경과 경험 차이다. 단순히 그곳에 가서 경험한 것을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의 상황을 문학 작품 등과 엮어서 이야기한다. 상상력의 공간이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런 문학보다 현실적인 모습들이다. 우리가 몰랐고, 은폐했고, 기대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이 저자의 문장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저자가 경험한 공간들이,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린다. 능력이 되면 소설로 만들고 싶은 공간들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