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의 망령들
스튜어트 네빌 지음, 이훈 옮김 / 네버모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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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이제야 번역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가끔 이런 작품들을 만나는데 뒤늦은 출간이라도 감사할 따름이다. 읽으면서 그 속도감과 전개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알고 있던 북아일랜드의 역사를 다시 되살리고, 알지 못했던 역사를 배웠다. 한때 북아일랜드 역사나 상황을 다룬 영화들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후 역사의 업데이트다. 물론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한 나라의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그 역사의 한 구석에서 살아온 남자의 삶을 전면에 내세워 암울한 분위기의 스릴러 액션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작품은 그것을 완벽히 해내었다.


제럴드 피건은 자신이 죽인 열두 유령 때문에 매일 괴로워하며 술에 취해 잠든다. 전직 IRA의 전설적인 행동요원이었고, 정치범으로 12년간 감옥에 있었다. 출소 후 7년이 지났지만 이 유령들은 계속 그를 따라다닌다. 어느 날 30년 친구이자 현재 정치인인 마이클 맥케나가 찾아온다. 맥케나는 바뀐 정치 분위기를 타고 성공한 정치인이 되었다. 이런 그에게 열두 유령 중 소년 유령이 처형의 몸짓을 한다. 맥케나는 술에 취한 피건에게 자신이 그 무리에 넣어줘 그가 지금 돈 걱정 없이 산다고 말한다. 이에 피건은 그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고 반발한다. 맥케나는 취한 피건을 집에 데려다 주는데 이 순간이 피건에게는 과거의 망령들을 없앨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바로 맥케나를 죽이는 것이다.


유령이 지목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숫자가 바뀐다. 열둘에서 시작해 열하나, 아홉, 여섯, 이런 식으로 유령의 숫자는 줄어든다. 열두 명을 죽여야 모든 유령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관련된 유령의 숫자와 이어져있다. 한 사람을 유령 셋이 처형을 원하면 셋이 사라진다. 피건은 더 이상 죽이고 쉽지 않지만 유령들의 강렬한 바람과 그 대상들의 비열한 행위가 그를 다시 살인자로 만든다. 그 나름대로 흔적을 지우고 알리바이를 만들지만 그를 살인자로 단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는 그의 고백으로 완전해진다.


작가는 피건의 입장만 다루지 않고 다른 인물들도 내세운다. 대표적으로 캠벨이 그렇다. 그는 비밀부대 출신 첩자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테러조직이나 작은 무리에 가담한다. 중개자를 통해 새로운 지시와 돈을 받고 움직인다. 피건의 살인 이후 뒤흔들리는 벨파스트 정치권에 내부 스파이로 침투한다. 이미 피건이 살인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무리들에게 그는 암살자 역할을 맡는다. 맥긴티의 지시 아래 피건을 미행하면서 움직인다. 물론 최우선 지시는 중개인을 통해 내려온 것이다. 캠벨의 비중은 상당하다. 마지막에 가면 중요한 반격의 열쇠가 된다. 이런 그조차도 피건과 정면에서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피건은 하나의 전설이다.


이런 피건을 뒤흔드는 여자가 등장한다. 맥케나의 조카인 마리다. 마리는 경찰과 사귀면서 IRA의 위협을 받았는데 이것을 삼촌이 막아주었다. 이 경찰이 나중에 다른 작품의 주인공인 잭 레논 형사라고 한다. 삼촌의 시체 앞에서 속내를 드러내었고, 이것을 피건이 본다. 이상하게 그녀에게 끌린다. 그녀도 그에게 좋은 응대를 한다. 삼촌의 죽음은 그녀에게서 방어막을 치운 것과 같다. 이전 IRA는 그녀를 위협하고, 피건은 이것을 막으려고 한다. 이것은 나중에 상황이 꼬이면서 복잡한 과거와 힘든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북아이랜드의 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과거의 병사들은 변한 시대상에 적응해 더 높은 자리로 가거나, 과거를 회상하면서 살아간다. 작가는 이런 변화된 정치 상황을 관련 인물들의 대화 속에 녹여내었다. 맥케나의 죽음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이것이 그 당시 북아일랜드의 불안한 상황을 대변해준다. 이런 현실 속에 과거의 망령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복수를 외친다. 이전에 그들을 죽였던 피건이 다시 그들의 욕망, 아니 피건의 죄책감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이 벌어진다. 폭력과 피의 고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액션과 폭력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멋진 스릴러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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