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타자기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희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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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몇 권 사놓았지만 언제나처럼 그냥 묵혀두고만 있다. 이 소설을 계기로 묵혀둔 책을 꺼내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소설은 제7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중장편 부분 우수상 수상작이다. 이 상을 받은 작품 중 재밌게 읽은 작품이 있고, 작가 이름 때문에 선택했다. 모두 읽은 후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이 궁금해 찾아봤다. 제목과 표지가 보이기에 내용이 궁금해 찾아보는데 인터넷서점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뭐지?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출판 대기 중인가?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될 텐데.


지하철 사고가 발생했다. 한 여자가 나타나 사람들을 구조한다. 그리고 서영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서영은 목사인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폭력 아래 살아간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폭력이 두려워 달아나 친정에 갔을 때 친정 식구들이 그녀를 돌려보낸다. 시댁 식구의 돈으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딸 지하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한때 딸을 죽이고 자신도 죽고 싶다는 생각에 아기의 목을 조른 적이 있다. 이 상황은 엄마와 딸 모두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지하는 친할머니의 폭력을 수없이 받는다. 엄마가 가족의 폭력 아래에서 벗어나지 않자 자신이 집을 나간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가출이고, 자신의 입장에서는 독립이다.


시어머니는 집에 CCTV를 설치하고 서영을 감시한다. 지하실 와인창고는 징벌방 역할을 한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서영과 지하를 그곳에 가둔다. CCTV를 그들의 행동을 수시로 본다. 어느 날 서영이 이 방에 갇힌다. 가사도우미가 몰래 책 한 권을 전해준다. 가출했던 딸 지하가 쓴 소설이다. <조용한 세계>란 제목이고, 실명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부터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조용한 세계란 소설 속 이야기와 순간이동자인 지하의 이야기다. 갑자기 초능력을 가진 지하가 등장해 놀랐다. 이 비약은 뭐지? 지하는 자신이 아는 곳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다. 이 능력을 다른 사람들 몰래 사용한다고 했는데 곳곳에 설치된 CCTV와 개인휴대폰이 순간이동 순간을 녹화한다.


CCTV는 이렇게 서영과 지하의 삶에 끼어든다. 서영은 집안에서 남편과 시어머니의 시선 아래 놓이고, 지하는 자유로운 이동에 제약이 생긴다. 지하의 경우는 순간이동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조용한 세계 속 이야기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끔찍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납치와 감금, 진실게임, 살인 등이 섞이면서 스릴러 장르로 발전한다. 그리고 지하의 정체가 밝혀지고, 순간이동 능력에 이상이 생기고 그녀의 세상에 조그만 균열이 생긴다. 이 두 세계를 이어주는 하나의 장치는 서영이 사용했던 타자기다. 이 타자기로 지하는 소설을 썼고, 책을 출간했다.


소설 ‘조용한 세계’가 충격적인 이야기로 이어지는 동안 지하의 실제 삶이 하나씩 드러난다. 아버지의 돈을 훔쳐 친구 집으로 들어가고, 그 집에서 돈을 도둑맞고, 얹혀살다가 아버지에게 쫓긴다, 이런 삶에서도 그녀는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공모전에 내고, 떨어지고, 전면 개작한다. 우연히 다른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이것이 돈벌이 수단이 된다. 갑자기 장르가 바뀌면서 분위기가 변한다. 소설에서 힌트를 얻은 서영이 집을 벗어나는 것은 한참 뒤다. 제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삶도 이해하지 못하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후회보다 현재의 중요성이 더 표현된다. 지금 이 순간.


지하가 독자와의 대화에서 “아무리 행복한 상상도 오늘의 내가 없다면 상상 속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지하는 집을 떠나 독립하면서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작가는 이 과정을 다양한 장르와 대담한 설정과 전개로 풀어낸다. 어떻게 보면 허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지하가 가진 생의 의지가 결코 끝까지 힘을 잃지 않으면서 가독성을 유지한다. 글로 쓸려니 이 책의 구조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읽게 되면 무난하게 그 구조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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