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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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데뷔작 <고백> 이후 많은 작품이 나왔다. 그 중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에 인터넷서점 검색을 하니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중 몇 권은 사놓고 묵혀두고 있다. 뭐 시간 나면 읽겠지 하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고백>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마도 인터뷰라고 하지만 한 사람의 독백으로 처리된 부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인터뷰들을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은 몇 번이나 가설을 세우고, 무너트리고 했다. 기존에 읽었던 추리소설들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작가는 그런 통속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미스 월드 출신의 성형외과 의사가 방송에 나와 성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얼핏 들으면 맞는 듯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지적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엄청난 숫자의 도넛에 둘러싸인 채 자살한 한 소녀에 대한 추적 미스터리다. 이 일을 알게 되는 것은 비만 상담을 위해 자신을 찾아온 동창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미용외과 다치바나 뷰티클리닉을 운영 중인 히사노를 만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어릴 때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스트레스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살이 많이 쪘다고 한탄한다. 그러다 학창 시절 뚱뚱했던 친구 요코아미 이야기가 나온다. 제1장의 ‘육, 십사’는 요코아미의 몸무게다.


이 이야기 속에서 히사노의 과거가 흘러나온다. 어릴 때부터 예뻤고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의대에 가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히사노의 분위기에 휩싸여 자신도 공부를 열심히 해 도쿄로 갔다고 한다. 할머니 때문에 살이 찌려고 노력한 이야기는 목욕탕에서 살 쪘다고 크게 외친 부분에서 잘 나온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 등으로 그녀의 체력과 활동량은 많이 떨어진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 이때만 해도 단순한 미용을 둘러싼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코 성형을 위해 그녀를 찾아온 아이돌의 이야기 이후 그녀는 자살한 소녀 유우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오래 전 떠난 고향 마을을 찾아간다. 그리고 유우와 그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관련자들로부터 듣게 된다.


자살한 소녀 유우는 어릴 때부터 통통했다. 뚱뚱한 사람이 느릴 것이란 편견은 유우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운동에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에 관한 에피소드 중 하나가 남자 아이와 함께 이인삼각 경기를 하다 넘어진 후 들고 뛰어 2등 한 것이다. 유우는 자신이 살쪘다고 그렇게 낙담해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다. 엄마가 만들어 준 도넛을 좋아했는데 이 도넛이 학교 행사에서 엄청난 히트를 쳤다. 나중에 이 도넛 때문에 살이 너무 쪄 문제가 되긴 했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히사노는 유우 관련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이 이유를 밝혀내고, 한 소녀의 자살이 단순히 비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님을 밝혀낸다.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 중에 나의 시선을 끈 부분은 성형 부분이 아니다. 히사노를 중심으로 펼쳐진 학창 시절 분위기다. 그녀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그녀의 말과 행동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별 감정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고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녀 주변에 머무는 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을 따라 말했다가 자격이 없다는 질타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그녀 자신의 이야기는 상대방의 말 속에서 나오지 자신이 직접 내뱉는 경우는 없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진짜 삶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인터뷰 속에 조금씩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외모에 대해 말한다. 살이 쪘다고, 코가 이상하다고. 벌크업에 신경쓰고, 몸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뚱뚱함에 크게 꺼려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자기 외모를 말하고, 자신들이 기억하고 이해하는 유우의 기억을 풀어낸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내가 무심코 나와 다른 사람에게 말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부끄러운 부분도 많다. 하지만 진짜 핵심적인 부분은 유우의 인터뷰에 잘 드러난다. 인간의 왜곡된 시선들과 뒤틀린 욕망과 죄책감 등이 엮이면서 만들어낸 비극 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외모의 기준이 바뀔지 모르지만 외모 평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가독성이 좋고, 마지막 한 방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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