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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봤다. 한참 일본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 이 영화를 봤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 배우가 주연이라 재밌게 봤던 것 같다. 하지만 기억 속 영화는 조금 가벼운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아마 여주인공 나카마 유키에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과 검색해 찾은 이 영화에 대한 후기를 보면서 기억에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작 소설과 영화는 결말 부분이 다르다. 이 다른 결말이 기억에 다른 이미지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광고기획사에 다니는 사쿠마의 기획은 광고주인 닛세이자동차의 새로운 부사장 가쓰라기에 의해 중단된다. 이 일에 열 받아 가쓰라기 집을 찾아갔다가 집밖으로 도망쳐 나오는 한 여자를 본다. 그녀를 뒤쫓는다. 시내 호텔에서 숙박이 거절되던 그녀에게 다가가 정체를 확인한다. 가쓰라기의 딸 주리라고 한다. 주리는 혼외자의 딸이다. 배 다른 동생과 싸운 후 홧김에 가출한 것이다. 하루 이틀 정도 재워주고 집에 보내면 되는데 그녀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바로 유괴다. 가쓰라기에게 나쁜 감정이 있던 사쿠마는 주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이 유괴를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고 이길 계획을 세운다.
유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납치만 한다면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른다. 돈을 받아야 한다면 상당히 어려워진다. 경찰의 개입이 없다면 사람과 돈의 교환이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경찰이 개입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흔히 일어나는 인질의 죽음이나 납치범의 체포 등이 생길 수 있다. 작가는 이 유괴를 성공하기 위해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 등에 나온 방식을 참고한다. 물론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는다. 가장 먼저 유괴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인질의 안전을 알려주고, 지속적인 연락을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돈을 받기 위해서는 돈 가방 등에 붙어올지 모르는 위치 추적기나 표시 등을 주의해야 하고, 몸값을 받은 후 혹시 있을지 모를 추적자를 따돌려야 한다. 주의하고, 긴장하고, 대범해야 성공이 가능하다.
이 유괴를 게임으로 생각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사쿠마는 주리에게조차 자신의 완전한 계획을 말해주지 않는다. 호텔에서 집으로 데리고 와 숨게 한다. 당연히 누구와도 연락하지 말고, 집 전화도 받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주리가 친구에게 전화를 한 통 했다고 한다. 미국에 가 있어 자동응답기 녹음을 지우면 된다고 말한다. 그 동네를 찾아간다. 여자들만 머무는 집이라고 말하며 사쿠마를 밖에 머물게 한다. 녹음을 지운 후 사쿠마는 그녀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모텔에 들어간다. 전화 도중에 뱃고동 소리가 들어가게 만든다. 당연히 이 일은 경찰 수사에 혼란을 끼치기 위해서다. 이 전화 한 통이 두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끈다. 산 속 차 안에서 정사를 나눈다.
사쿠마는 일상 업무를 진행하면서 닛세이자동차 신차 기획에 잠깐씩 참석한다. 가쓰라기의 반응을 그때마다 본다. 차분한 듯하다. 딸이 유괴된 아버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연락과 몸값 지불일 등이 갑자기 확정되면서 바빠진다. 사쿠마는 돈을 받기 전 경찰의 미행이 있는지 확인한다. 당연히 가쓰라기는 경찰에 연락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런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주리는 사쿠마의 집에 머문다. 어느 날 사쿠마는 주리의 사진을 한 장 몰래 찍는다. 그때 카메라가 그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둘은 연인 아닌 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히 한시적이다.
소설은 사쿠마가 어떤 계획으로 몸값을 받을지, 그 과정은 어떨지, 이후 사쿠마와 주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등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른 작품들처럼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다. 이 소설 속 사쿠마도 주리도 가쓰라기도 모두 게임에 참석한 플레이어들이다. 이 게임에 맞는 가면을 쓰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사쿠마는 단순히 몸값을 받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경찰 조사까지 머릿속에 담고 있다. 주리에게 납치부터 풀려난 순간까지 상황을 되풀이해서 주입한다. 꼼꼼하고 철저하다. 하지만 진짜 게임은 이 유괴 너머에 있다. 반전과 진짜 게임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언제 시간나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