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빼미 눈의 여자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6월
평점 :
무속 공포소설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박해로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번에도 무대의 배경은 경상북도 섭주란 가공의 도시다. 주인공 한기성은 9급 공무원으로 평택에서 근무한다. 섭주에 오게 된 이유는 공무원 연수 때문이다. 민원 업무를 맡으면서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고 있었다. 연수는 이 일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다. 즐거운 마음으로 섭주의 연수원을 찾아온다. 이곳에서 연수원 동기였던 준오를 만난다. 준오는 민원인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진상 민원인이 벌인 신나 사건은 목숨마저 빼앗아갈 뻔 했다. 공무원과 민원 상대라는 공통점이 동기라는 사실과 엮여 이들을 이어준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2000년대 초반임을 작가는 말한다. IMF 사태는 공무원에 대한 관심을 최고도로 높여놓았다. 그 이전까지 정리해고나 실직은 회사가 망할 때나 있던 일이다. 이 공포가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선호도를 높였다. 물론 이전에도 공무원에 대한 경쟁을 치열했다. 하지만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선호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기성의 여자 친구 화영이 계약직을 그만 두고 노량진으로 간 것도 이런 안정성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동사무소 직원들의 이미지가 전체 공무원의 이미지였던 시절이기도 하다. 이 직장의 유일한 문제는 바로 민원인들이다. 아니 일부 진상, 정말 진상 민원들이다.
반가운 동기생에 진상 민원인을 경험한 이 둘은 연수 첫날 섭주 시내로 나가 회를 먹고 노래방에 간다. 주인이 맹인인 노래방에서 도우미도 부른다. 기성은 술을 먹다 필름이 끊어진다. 깨어났을 때 준오가 옆에 있다. 모텔이다. 항문이 아프다. 사실 그는 치질이 있어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이런 몸 상태와 함께 도우미와 핸드폰이 바뀐다. 딸이 핸드폰을 교환하기 위해 온다. 그녀의 외모에 끌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 동창인 연진이다. 연수원 오기 전에 꾸었던 기묘한 꿈 속에 연진이 등장한다. 그리고 권태 때문에 한 번 도우미로 나왔다는 엄마 주리가 그에게 질척거린다. 순간 이 막장 드라마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이 연수원에서 항문으로 피를 쏟아내고 아파할 때 준오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 혹시 그가 게이가 아닐까? 그날 밤 자신만 술이 취한 이유도? 주리가 소개한 유명한 의사를 만나 항문에 외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의사가 준 연고를 바르니 통증이 사라진다. 병원 앞에서 질척거리는 주리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 이전에 연진이 연주했던 음악에서 환상을 보았던 그는 주리에게 넘어간다. 이 음악은 그에게 걸린 주술이다. 이런 그에게 다가오는 한 인물이 있다. 같이 연수 받던 기석이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기성의 것과 비슷하다. 어지간해서 잘리지 않는 공무원이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올빼미 눈을 가진 여자를 만나는 것도 이 주술 걸린 음악을 들으면서다.
2부로 넘어가면 기성을 둘러싼 음모와 그가 선택된 이유가 나온다. 기성에게 일어난 일들이 치밀하게 꾸며진 일임을 하나씩 보여준다. 왜 이들이 이런 일을 벌일 수밖에 없는지, 이 일에 가담한 사람들은 누군지, 가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그리고 올빼미 눈을 가진 여자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려준다. 이 일은 두려움과 탐욕과 이기심이 뒤섞여 일어났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작가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이 일을 확장시키거나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 전작들에서 본 피 튀기거나 거대한 공포의 존재가 이 소설에서는 없다. 약간 아쉬운 대목이다.
전작들보다 더 매끄럽게 진행된다. 거칠고 투박하고 참혹한 장면들이 많이 사라졌다. 큰 한 방이 부족해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김동리의 <을화>가 소설 속에 인용된다. 실제 이 소설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다. 작가에게 이 작품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읽으면서 의문 하나가 생겼다. 양력 생일을 이용한 주술이다. 무당이라면 음력으로 계산하지 않나? 최근 무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니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후일담으로 나온 이야기들은 보통 여운을 지우는데 이 소설은 더 강한 여운을 남긴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