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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숨결
박상민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현직 의사가 병원을 배경으로 쓴 미스터리 스릴러다. 의학 미스터리 장르는 이미 미국에서 로빈 쿡, 테스 게리첸 등이 잘 만들어놓았다. 일본으로 넘어가면 가이도 다케루 등이 있다. 한국도 병원을 배경으로 몇 권의 스릴러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나의 장르로 발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작가 자신도 이런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사실 자신이 일하는 곳을 배경으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쉬운 접근법 중 하나다. 물론 다른 분야로 들어가면 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현직 의사란 타이틀은 이 작품의 의학적 세부 사항들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죽음의 가능성을 알려준다.
프롤로그가 나올 때만 해도 의사 강나리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각 장마다 들어가 있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아이가 어떤 부분에서 접점을 이룰지 궁금했다. 작가는 교묘하게 아이의 성별을 가려놓았고, 이 아이가 경험한 죽음을 병원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살며시 연결시켰다. 각 장마다 나오는 이야기는 이 아이가 큰 후 누구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누군지 알게 되면 살인사건의 중요한 용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인이라고 확정시키지 않는 것은 이것을 반전 트릭으로 사용한 소설을 읽은 적 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의 교수는 아주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전문의가 되기 위해 이들의 인격 모독마저 참아야 한다. 권위와 권력은 결합해서 최소한 병원이란 공간 안에서 한정적인 사람들에 최고의 지위를 부여한다. 군대마저 변하는 세태 속에서 말이다. 레지 1년차 의사 현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바로 이런 부조리함을 잘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다. 레지 2년차 선배가 보여주는 장면은 또 어떤가. 병원이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에 이런 강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이다. 만약 생명을 더 위한다면 더 많은 의사를 고용해 그들의 피로 때문에 생기는 실수를 예방해야 한다. 병원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강나리를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만든 프롤로그의 사건은 이현우에게 넘어간다. 현우는 외과전문의가 되고 싶다. 김태주는 탁월한 수술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수술 참여 중 핸드폰 벨이 울리면서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다. 이현우 선생이라고 부르지만 말투에 담긴 멸시와 권위적인 어투는 불쾌하다. 그를 외과로 오게 만들려고 한 선배의 의도를 보여줄 때 그 야비함이란. 현우는 정의롭지도 자기주장이 강한 인물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처우에 결코 반발하지 않고 속으로 삼킨다. 이런 그에게 한 환자가 나타나면서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바로 한수아다.
한수아의 아버지는 이 병원에서 갑자기 죽었다. 수아는 엄마가 의사에게 무릎 굽혀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엄마를 의심한다. 엄마를 살인자 취급한다. 이 갈등이 1년 간 이어져오고 있다. 수아는 병원도 의사도 신뢰하지 않는다. 수아는 현우에게 그 날 밤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한다. 틀어진 모녀 사이를 바로 잡고 싶은 욕심과 수아에 대한 호감 때문에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까지 문제없었던 환자 두 명이 갑자기 응급상황이 생기고 사망한다. 현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조사한다. 이 조사 때문에 내과 레지던트 선배와 충돌이 생기고, 이 조사 건이 김태주에게 알려진다. 최악의 상황이다.
한 레지던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는 과정은 대학병원의 시스템을 한 번 들여다보게 한다. 개인정보보호가 강화되어 내가 본 것이 기록되어지고, 각 전문의 사이의 갈등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능성 없는 환자를 다른 과로 보내 문제를 떠넘기는 일도 빈번하고,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는 공모도 자행된다. 이런 일들을 현우의 조사과정 속에 틈틈이 넣어 그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슬기란 어린 환자를 통해 안락사 문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고, 현우와 수아의 관계를 통해 의사와 환자의 윤리문제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사고의 흐름은 빠른 전개 속에 이어지지만 너무 감상적인 주인공 덕분에 긴장감이 약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으로 넘어가면 ‘뭐지?’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런 마무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마무리에 강한 영향을 편집자가 끼쳤는데 이 이야기를 보고 다시 한 번 편집자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혹자는 편집자를 작가만큼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몇 가지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가독성이 좋고 흔하지 않은 한국 의학스릴러란 부분에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