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니시무라 교타로의 소설을 읽었다. 몇 년 전에 읽은 <종착역 살인사건>이 마지막이지만 그 이전에 헌책방에 산 책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아마 이 작가를 트래블 미스터리의 대가로 기억하게 된 데는 이 작품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본격 추리 소설이 나왔다. 소설의 도입부에 작가는 쌍둥이 트릭을 사용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명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정면 도전장을 낸다. 실제 소설 속 설정이나 내용 속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자주 다루어진다.

 

도입부에 쌍둥이 형제가 나온다. 둘은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한 장의 무료 숙박 초대장이 사람들에게 배달된다. 사건은 한 인물이 얼굴도 가리지 않고 강도짓을 하는 것이고, 초대장은 한 쌍의 연인에게 스키장이 있는 호텔 관설장의 무료 숙박권이다. 이 초대장은 이들에게만 온 것이 아니다. 이들이 관설장에서 만난 인물들은 모두 여섯 명이다. 관설장의 주인은 왜 이들이 선택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연쇄살인사건의 가장 중요한 동기다. 이 여섯 명의 남녀들은 한 명씩 죽음을 맞는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열 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볼링 핀이 한 명씩 죽을 때마다 사라진다.

 

얼굴을 드러낸 강도는 반복되면서 몽타주가 작성되고, 피해자 중 한 명이 운전하다 용의자를 잡는다. 그런데 또 다른 상점에서 강도가 나타난다. 피해자들이 와서 용의자를 확인하니 그가 맞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강도가 쌍둥이란 점이다. 범죄현장에 지문을 남겼다면 누군지 알 수 있겠지만 얼굴만 보여줬을 뿐이다. 두 사람 모두 범인으로 잡아넣기는 무리다. 경찰들이 쌍둥이 범죄자에게 농락당한다. 그렇다고 경찰들이 포기할 리가 없다. 그들은 이 쌍둥이 형제를 미행하고, 잠복한다. 미행하다 들키지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소설은 이 쌍둥이 강도를 잡으려는 형사와 관설장의 상황을 교차하면서 풀어간다. 다른 시간대라면 쉽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겠지만 같은 시간대로 두 사건이 진행된다. 쌍둥이 트릭과 관설장의 연쇄살인사건은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관설장의 연쇄살인은 실제로 큰 공포나 긴장감을 불어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아쉬운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립된 산 속 호텔에서 한 명씩 죽어나가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심리 묘사에서 강한 공포나 불안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히스테리가 그 상황을 집어삼켜도 할 말이 없는데 말이다. 미스터리 트릭을 풀기 위한 설정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쌍둥이 형제에게 끌려다니던 경찰에게 돌파구가 열리는 것은 한 통의 편지다. 그들이 어떤 트릭을 사용했는지 알게 되고, 이런 트릭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알려주는 편지다. 그리고 다음에 어떤 범죄가 일어날지 알려준다. 동시에 관설장의 끊어진 전화선이 이어지면서 연쇄살인 정보가 경찰에 알려진다. 하지만 바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루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이면 남은 사람들을 죽이기 충분하다. 실제 경찰과 피해자 가족들이 관설장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마무리된 다음이다. 경찰에는 편집된 정보만 넘어간다. 이 사건도 한 장의 편지가 관설장에 오면서 발부된 초대장에서 비롯했다.

 

트래블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이 소설의 트릭 중 하나는 지하철이다. 발로 뛰는 형사가 이것을 발견한다. 쌍둥이 트릭도 이미 알려줬다. 하지만 이런 설명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정된 생각에 빠져 다른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볼링 핀의 개수가 의미하는 바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인데 말이다. 중간 중간 작가가 깔아놓은 트릭 몇 가지와 범인은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미 알고 있던 것이라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트릭은 놓쳤다. 심리 묘사와 연쇄살인의 동기가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트릭만 놓고 보면 아주 훌륭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