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척도
마르코 말발디 지음, 김지원 옮김 / 그린하우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려한 광고 문구를 내놓은 책이다. 다 빈치 사후 500주년 기념작이란 광고다. 사실 이런 광고 문구는 누구나 사용이 가능하다. 다 빈치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라면 누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광고에 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역사소설과 미스터리의 완벽한 결합이란 문구는 팩션으로 간단히 치환가능하다. 하지만 매혹적인 르네상스 인물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면 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는 <다 빈치 코드>란 소설이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했던가. 그가 남긴 노트가 얼마나 높은 가격에 경매를 통해 판매되었던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문구다.

 

처음에는 <다 빈치 코드> 같은 빠른 전개와 미스터리로 가득할 줄 알았다. 이 기대는 몇 쪽을 읽지 않아 사라졌다. 다른 서평에서 본 것처럼 20쪽까지 등장인물 소개가 나온다. 이런 친절한 소개가 예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찾아보며 누군지 확인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게을러졌다. 만약 한두 쪽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쪽에 걸친 소개라니. 낯선 이름과 역할 등은 솔직히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당시 역사를 좀 안다면 이 소개가 소설을 이해하는데 더 쉽고 더 많은 도움을 줬을 것이다. 단편적으로 이 시대와 인물을 기억하고 있기에 이 등장인물이나 상황이 체계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1493년 가을 루도비코 일 모로의 궁중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외상이나 독물 중독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전염병을 의심한다. 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것은 전염병이다. 과학이 현재처럼 발전하기 전이다 보니 점성술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20세기 초까지 의사들의 주 치료 방법이 사혈법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 시대를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행이라면 해부를 해본 레오나르도가 그 곳에 있었다는 것 정도다. 그는 시체가 어떻게 죽었는지 해부를 통해 안다. 시체의 정체도. 나중에 이것이 잠깐 그에게 의심을 불러온다.

 

그 당시 경제, 정치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밀라노 공국은 경제 호황과 정치적 번영기를 거치고 있고, 다른 국가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불러온다. 재밌는 것은 레오나르도가 발명한 장치가 와전되어 상대국에 공포로 자리잡았다는 설정이다. 다 빈치의 공책을 노리는 무리가 등장한다. 그의 아이디어가 담긴 공책이다. 이것을 얻으면 밀라노 공국을 쉽게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 편으로 밀라노의 경제를 파탄 내려는 세력이 있다. 가짜 신용장을 바탕으로 하는 작전이다. 이 부분은 경제학의 가장 기본을 잘 보여준다. 화폐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환가치란 사실을 말이다.

 

소설의 많은 부분에서 레오나르도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의 노트를 훔치기 위해 남색가란 소문을 이용해 남자가 유혹하는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몇 가지 에피소드는 이렇게 소소한 재미를 준다. 계속해서 나의 관심을 끈 것 중 하나는 그가 일 모로를 위해 만들고 있던 청동기마상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그는 실패했다. 청동의 가치와 계산 착오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해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다. 현대 과학에 너무 익숙한 우리가 가끔 망각하는 몇 가지 일들 중 하나가 이런 기계 장치나 조각상들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빠른 전개도 장면 전환이 빠르지도 않다. 비슷하고 낯선 이름은 기억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느리지만 점차 의도가 드러나는 상황들은 읽는 재미를 조금씩 높여준다. 그 시대에 대한 충실한 설명과 해설은 이런 이해를 높인다. 물론 가끔 작가가 너무 상황을 현대 용어로 해석하면서 생기는 돌출이 아쉽지만 말이다. 화려한 광고 문구에 비해 레오나르도의 위대함은 그렇게 부각되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온다. 인간의 척도란 제목과 다 빈치의 청동기마상 제작 실패는 왠지 이어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