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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끈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중국 SF 작품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SF 문학상 휴고상을 수상한 것이다. 류츠신이 <삼체>로 휴고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동양 작가에게도 SF문학상의 문이 열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또 다른 중국 작가가 받을 줄은 몰랐다. 이런 중국 SF 작품이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때는 중국 SF하면 그냥 무시했던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다. 물론 좋은 번역가를 만났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문학에서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결국 관심은 작가와 작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단편집의 목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휴고상을 받은 <접는 도시>가 실려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여섯 편 중에 그 제목은 없다. 조금 아쉽다. 그리고 이 단편집에서 다루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마지막에 실린 <인간의 섬>에 가면 인간의 탐욕과 결합한 인공지능의 미래가 펼쳐진다. 이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삶에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포기한다. 뇌에 칩을 심어 제우스라는 슈퍼 인공지능에게 항상 최선의 판단을 맡겨버린다. 이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120년 전 우주로 나간 탐사대원들이다. 당연히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최선 혹은 최고 효율이 가진 문제가 드러난다. 마지막 마무리가 낭만적인 부분이 있지만 자신의 선택이라고 착각하면서 인터넷 검색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우리의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첫 작품 <당신은 어디에 있지>는 인공지능을 가진 분신으로 펀딩을 받으려는 런이의 하루를 보여준다. 그의 분신은 사용자의 가장 좋은 점만 취합해 상대방에게 답한다. 인간 감정이 지닌 복잡성과 이중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지속적인 성공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점을 마지막에 표출했을 때 해결책이 나오지만 이것을 구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학습을 잘 보여주는 단편이 바로 <건곤과 알렉>이다.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다른 영역으로 바꾼다. 인간의 목표 의식과 자유의지를 배우게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 끝에 이르면 <인간의 섬>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영생 병원>은 <사랑의 문제>와 더불어 미스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생 병원>의 미스터리는 어렵지 않다. 중간에 단서를 뚝 던져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했던 어머니가 건강하게 돌아온 후 일어나는 사태와 숨겨진 현실이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인간 복제를 반대하는 무리들이 그를 내세워 병원을 무너트리려고 한다. 그가 정치적 도구로 바뀌는 순간이다. 어머니의 기억을 그대로 가진 건강한 어머니의 존재는 진짜 어머니인지 그 의미를 묻는데 인간 존재의 근원을 돌아보게 한다. <공각기동대> 속 전뇌를 생각하면 답이 쉬울 듯한데 아직 현실이 그 미래를 따라오지 못하는 괴리는 어쩔 수 없다.
<사랑의 문제>는 한 가족과 그 가족을 돌보는 인공지능 가사도우미 천다의 이야기다. 아내가 죽은 후 집을 돌보기 위해 천다를 데려온 아버지가 창에 꿰인 후 이야기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천다와 두 남매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떻게 보면 <라쇼몽>의 SF 작품 같다. 가족의 불화와 알력 속에 천다가 보여주는 최첨단 치료와 대응은 지극히 이성적이지만 상황을 개선시키지는 못한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이권을 둘러싼 문제가 엮이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재밌는 것은 배심원의 구성이다. 이 재판의 경우 인간과 인공지능의 배분이 1대1이지만 다른 경우라면 1대 11인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사라질 직업 중 하나가 변호사라고 하는데 이것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에 진실이 드러나고 사후처리가 나타날 때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전차 안 인간>은 <건곤과 알렉>과 더불어 아주 짧은 단편이다. 보통의 소설이 안드로이드인지 확인하는 문제를 다루는데 이 작품은 인간인지를 확인한다. 로봇3원칙과 역튜링 테스트를 이용한 단편인데 먼 훗날 이 문제가 한 번 이상은 전쟁에서 문제가 될 것 같다. 인간 공격이 가능해진 인공지능들이 과연 상대방만 공격할까? 다시 <인간의 섬>의 한 장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을 죽이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슈퍼인공지능 제우스의 선택으로. 전체적으로 예상한 것보다 가독성이 좋다. 인공지능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한국 SF작가들의 작품들이 더 많이 더 좋은 번역으로 좋은 결과를 맺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