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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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토 망구엘의 책을 몇 권 읽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가장 편안하게 읽었다. 이전 책보다 좀더 여유롭게 읽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 사연도, 그를 통해 배우게 된 내용도 이전까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를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자신의 경험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지만 가장 중심에 놓여 읽는 것은 제목처럼 ‘독서의 역사’다. 구술과 기록에 대한 부분은 얼마 전 읽었던 테드 창의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책과 독서에 대한 나의 지식을 다시 돌아보고,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뭐 많은 것을 그냥 놓치기도 했지만.

 

책이란 것이 지금의 형태로 나오게 된 과정도 나온다. 이 책이 나올 당시만 해도 지금 같은 전자책은 없었다. 시디롬에 담은 책이나 인터넷으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읽기 위해서는 쓰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앞에는 문자가 있어야 한다. 가볍게 쐐기문자와 그림 등에 대해 말한다. 문자의 탄생으로 이야기를 넘기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있어야 한다. 파피루스, 양피지, 목판, 석판, 진흙 조각 등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나의 지식에서 조금 더 들어갔다. 양피지가 파피루스보다 저렴했다니 예상외다.

 

이 책 이전에는 서양에서도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사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책 내용에 더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눈으로 읽다가 쉽게 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입으로 혹은 속으로 문자들을 읽는다. 과거에 눈으로 읽는 행위가 특별했다는 것과 이런 독서 행위가 상대적으로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소리 내어 책을 읽던 시절이나 책 읽기가 힘든 사람에게 누군가가 대신 책을 읽어주는 것은 당연하다. 망구엘이 보르헤스에게 해준 책 읽어주기가 떠오른다. 과거 이런 시절의 책 형태는 현재와 많이 달랐다. 자료 그림 등을 보면 몇 명이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금속활자가 만들어낸 출판 혁명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지만 필사자들의 아름다운 서체를 흉내 내려고 했다는 부분에서 서체를 다시 떠올린다.

 

독서가로서의 작가와 번역가가 이야기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대목들이 나온다. 릴케의 번역 이야기는 번역이 왜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지 잘 보여준다. 직역과 의역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지 않은가. 또 예전에 여성에게 글자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과 독서가인 여성들이 쓴 글에 대한 부분은 최근으로 넘어오면 노예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지 않은 역사와 이어진다. 성경을 통해 글자를 배우는 노예들의 노력과 열정은 나태해진 나를 질타하는 듯하다. 책 읽기 금지는 금서 이야기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 유명한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나치의 분서 외에도 많이 있어왔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일어난 금서 이야기다. 예전에 금서에 대해 읽었던 부분이 살짝 생각난다.

 

이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예전에는 책을 읽기 위해 책을 훔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다. 읽고 돌려준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단순히 소유욕이나 판매를 위해 훔친다면 어떨까?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도서관에서 고가의 책을 훔친 인물 이야기는 또 다른 변주가 가능하다. 미술관의 작품처럼 말이다. 책벌레 이미지는 언제부터인가 하나로 굳어져 왔다. 나 자신도 적지 않게 읽지만 책벌레 이미지는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이 이미지가 한 독서가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데 살짝 가슴 아프다. 왜 얼간이 이미지가 되었는지 그 연원을 찾아가는 것도 재밌을 갔기는 하다.

 

마지막 장에서 독서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수십 년 전에도 나왔다. 하지만 출판되는 책 숫자는 더 늘어났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는 다는 행위에서 문맹률을 다루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문자를 안다는 것이 특권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근대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글자를 몰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독서 행위가 한정된 일이었다는 대목은 있다. 이 독서가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말하는 대목도. 읽지 못하기에 책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고, 그림으로 좀더 알기 쉽게 만들었던 역사도 있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지적이 그의 풍부한 지식과 섬세하고 매혹적인 글에 대한 질투인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망구엘의 책들을 한 권씩 읽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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