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뒤의 두 작품은 오래 전에 읽었다. 재밌게 읽은 기억이 뚜렷하다. 첫 작품을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출판사는 바뀌었다. 번역자는 그대로다. 구판의 표지가 요리코의 자전거를 의미한다면 이번에는 좀 더 추상적이다. 스물다섯 살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대단하다. 3부작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요리코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번에 완전히 풀렸다.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가 떠올랐다. 아마도 앞부분에 수기가 나온 것과 수기를 둘러싼 트릭 때문일 것이다.

 

사랑했던 딸의 죽음에 절규한 아버지 니시무라 유지의 복수를 담은 수기로 시작한다. 열일곱 살 딸이 목이 졸린 채 죽었다. 경찰은 성범죄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 동네에서 미수 포함 두 번의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해부 결과 요리코가 임신 4개월이란 충격적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누가 아버지일까? 그가 범인일까? 니시무라는 복수를 꿈꾼다. 이미 14년 전 불행했던 교통사고로 아내가 반신불구가 되었고, 임신하고 있던 뱃속 아들은 죽었다. 아내에겐 요리코의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은밀히 조사한다. 경찰이 숨긴 몇 가지 사실 때문에 경찰도 믿지 못한다. 반 친구들의 말을 통해 학교 선생 중 한 명이 용의자로 떠오른다. 단순 혈액형으로 비교하면 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만약 그가 아니라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게 된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조사한다. 확신이 든 순간 살인하고, 자살을 기도한다.

 

딸의 죽음과 아버지의 수기는 두 살인 사건을 하나로 묶고, 자살은 수기에 사실이란 확신을 불어넣어준다. 이 수기 때문에 피해를 본 요리코의 학교에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명성을 이용해 이 소문을 잠재우려고 한다. 가해자였다가 피해자로 바뀐 선생 히이라기가 요리코와 성교를 나누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만약 교사가 학생을 범했다면 학원에 문제가 생기고, 오빠의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은연중에 경찰에 압력을 행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리즈키는 이 재조사를 의뢰인의 바람대로 할 마음이 없다. 그는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재조사의 시작은 수기의 허점을 파악하는 것부터다. 그가 읽으면서 느낀 이상함은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커진다. 자살자가 남긴 기록이 거짓일리 없다는 맹신을 그는 거부한다. 그의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늘어나고, 조사를 방해하려는 시도도 생긴다. 수기 속에 나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수기의 진실 여부를 다시 묻는다. 수기 속 문장 하나에 의혹을 품고, 수기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낸다. 진실은 보여주는 수기 너머의 어둠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읽으면서 ‘혹시’했던 가정은 ‘역시’로 바뀌었고, 이것은 또 다른 반전으로 이어진다.

 

모든 비극은 과거 속에서 일어났다. 요리코의 죽음은 현실이다. 요리코를 위해서란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의 수기와 그 이면의 진실은 ‘사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수기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수기를 기록한 니시무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살 소동의 가능성도 검토하지만 의사들은 부정한다. 사건을 조사하다보니 점점 더 과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실의 단서는 과거 속에 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가설은 대담하고 위험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혹시’라고 생각한 나의 추측에 반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이 살인 사건의 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3부작의 다른 작품에 비해 조금 거친 맛이 있지만 가독성은 여전히 좋고, 재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