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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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에 출간된 정여울의 첫 에세이 리커버 에디션이다. 정여울이란 이름을 인식하게 된 것은 <내사 사랑한 유럽 TOP 10>이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정말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이 경험한 곳만 담고 있지 않고, 가보고 싶은 곳을 포함해 깜짝 놀랐다. 이후 <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읽었는데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가득 묻어나 객관성에 의문이 조금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문장이 좋고, 사진이 많아 읽기 부담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한참 오래전에 지나간 나의 20대를 잠시 돌아보고 싶어 선택했다.

 

20대를 돌아보면 한 것보다 놓친 것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아마 내가 20대에 이런 책을 읽었다면 과연 이 글들이 가슴에 와 닿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 시기를 지나온 나에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20개의 키워드가 20대를 연상시키지만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 마지막이 ‘질문’인 것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다. 실제 나를 비롯한 20대들은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이고 좋은 질문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20개의 키워드를 하나씩 나열하면 우정, 여행, 사랑, 재능, 멘토, 행복, 장소, 탐닉, 화폐, 직업, 방황, 소통, 타인, 배움, 정치, 가족, 젠더, 죽음, 예술, 질문 등이다. 이 키워드들이 각각 독립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분류를 한 것뿐이다. 여행과 장소, 화폐와 직업, 멘토와 배움 등으로 엮을 수도 있다. 나의 20대 키워드를 여기서 뽑는다면 우정, 사랑, 탐닉, 방황, 죽음, 질문 등일 것이다. 친구와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사랑에 빠지고, 뭔가를 미친 듯이 파고들었고, 고독을 느끼며 방황하고, 죽음을 생각했다. 비겁한 행동도 적지 않았고, 내 삶의 존재에 질문을 던졌다. 남들처럼 구체적인 꿈을 꾼 적은 없고, 30대가 된다는 것에 어떤 두려움도 기대도 하지 않았다.

 

29살 후배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서 마지막 20대를 아쉬워할 때 공감하지 못했다. 그와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20대의 무모함으로 몇 가지 행동을 했는데 지금도 이 기억들은 강렬하게 작용한다. 어떨 때는 무용담처럼 풀릴 때도 있다. 여행은 국내 여행만 갔고, 해외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중에 큰 후회로 남았다. 더 넓고 새로운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더 많이 나갔다면 내 삶의 철학 중 몇 가지는 바뀌었을 것이다. 괜한 아집이었다.

 

나는 재능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재능을 살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직업과 취미는 다른 문제란 것을 깨달았다. 취미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독서와 영화다. 그 비중이 최근에 독서 쪽으로 더 흘렀지만 영화 보기에 대한 집착이 한때는 대단했다. 저자는 방황을 “더욱 대차게 나다움을 벗어던짐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나다움을 되찾는 방법”이라고 했다. 방황 속에서 진정한 나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방황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피상적이지만 늘 갈구했던 것이다. 시간을 정하고 이 나이를 넘기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던 것은 현실이 허무하고 추악했기 때문이다. 삶의 아름다움보다 그 부분이 더 부각되다보니 죽음에 더 빠졌다. 죽음, 종말을 말할 때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이란 질문을 던지는데 이에 대한 나의 답은 언제나 같다. 오늘처럼이다. 미래는 지나간 현재다. 현재를 살지 않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돌아다니다가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은 내 가족에게 이런 시간도 돈도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작은 깨달음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작은 물줄기는 만들었다.

 

저자의 글 중에서 나의 머릿속을 강하게 두드린 것이 있다. 바로 “학습된 불안감”이다. “한국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개개인에게 과도한 두려움의 문화를 학습시킨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하지만 잠시만 둘러봐도 이 학습된 두려움의 흔적은 곳곳에 널려 있다. 이 ‘불안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이것을 자각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우리의 진정한 자아 찾기가 가능하다. 이런 에세이라면 저자의 다른 글도 더 찾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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