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느낌의 시간 / 우리가 서로 알지 못했던 시간 이상의 문학
페터 한트케 지음, 김원익 옮김 / 이상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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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의 책은 처음 읽었다. 집에 몇 권은 더 있을 것 같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이다. 인터넷서점에서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고 출간된 책들의 표지를 보고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이제 내가 한 번도 읽지 않은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전 거의 출간되지 않은 작가들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페터 한터케는 상당한 작품이 출간되었다. 나의 독서가 한쪽으로 편향되면서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점점 덜 읽게 된다. 문학상이라고 받으면 관심을 두지만 재미 위주의 책들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 한 편과 희곡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진정한 느낌의 시간>이라는 중편소설과 <우리가 서로 알지 못했던 시간>이라는 무언극 희곡이다. 공통적으로 시간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 있다. 원제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편집하면서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구성의 책을 오랜만에 본다.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운 작품은 무언극 희곡이다. 광장과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지나가고 작은 몸짓만 있을 뿐이다. 길을 가는 방식도 다르다. 빠르게 느리게 사선으로. 갑자기 커피숍 창밖으로 오거리를 걸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을 멍하니 보던 때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들이 스쳐지나간 순간들은 나중에 서로가 알게 될 때 그 시간과 공간으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진정한 느낌의 시간>의 주인공은 파리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관 언론 담당관이다. 그레고르 코위쉬니히가 이름이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이름이다. 코위쉬니히의 일상과 그가 느끼는 감정들을 풀어내는데 쉽게 몰입하지 못했다. 그가 돌아다닌 거리와 만난 사람들과 업무들이 다양한 느낌으로 드러난다. 이 느낌은 둘쑥날쑥하는데 이것을 어디까지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애인과의 만남과 의미없는 몸짓이 이어지고, 죽음의 충동을 느끼고, 처음 보는 낯선 여자와 섹스를 한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긴 꿈을 꾸기도 한다. 보고 느끼는 시간들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서로 알지 못했던 시간>이 한 공간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면 이 소설은 코위쉬니히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의 시선은 느낌의 변주로 이어진다.

 

진정한 느낌이란 과연 가능할까? 이 느낌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수 있을까? 본다는 것과 움직이는 것과 만난다는 것이 결합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유동적이다. 죽음을 생각한 그가 달려오는 차를 피하는 것이 단순히 본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느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느낌은 순간의 느낌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느낌들이 모여 진정한 느낌이 될 수도 있다. 말하고자 한 말을 다르게 내뱉은 것은 또 어떤 느낌일까? 다른 소설도 읽고 이 작가의 세계를 좀 더 알아봐야겠다. 그가 이전에 주장한 것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 부분도 좀 더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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