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텍 이삭줍기 환상문학 2
윌리엄 벡퍼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림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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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환상소설이란 말에 혹했다. 영국인에 의해 불어로 쓰인 아라비아 이야기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읽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서평을 쓰려고 하니 쉽게 이야기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고, 가독성도 좋은데 말이다. 기억을 더듬으면 몇 가지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오감의 궁전이나 지적 욕망에 의해 등장한 악마를 공처럼 차는 장면이나 천오백 계단을 가진 탑 등의 이미지다.

 

사마르의 칼리프 바텍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지배자다. 그의 눈을 정면에서 본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감의 궁전을 지어놓고 감각의 욕망을 채웠지만 지적호기심은 아직 부족하다. 어느 날 그에게 전달된 칼에 쓰인 글자의 뜻을 알고 싶어 학자들을 불러 모은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수염만 태운다. 한 나그네가 이 칼에 적힌 문자를 해독한다. 왕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나그네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 이 소설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화려한 장면인 공처럼 변한 나그네를 칼리프와 백성들이 차는 장면이 이때 나온다. 이 비현실적인 장면이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라비안나이트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왕의 욕망은 한 번 타오르자 멈추질 않는다. 잠시 이성을 찾아도 그의 어머니인 왕모 카르티스가 다시 부채질한다. 율법을 지키기보다 점성술과 흑마법 등으로 더 많은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지하 화염의 궁을 찾아가다 에미르인 파크레딘의 딸 누로니하르와 사랑에 빠졌을 때 현실에 만족하며 더 나아가질 않는다. 이 소식을 들은 카르티스는 다시 바텍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아니 함께 떠난다. 이런 장면들 속에 선한 지니들이 나타나 다시 발길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누로니하르의 욕망까지 합쳐지면서 끝없는 나락으로 빠진다.

 

이런 과정을 작가는 아라비안나이트 풍으로 풀어낸다. 카라티스가 흑마법을 부리는 탑은 고딕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녀와 독과 주물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저주와 악독한 욕망과 죽음으로 가득하다. 위험한 왕을 구하기 위해 온 용감한 시민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 수 있다. 바텍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 50명을 제물로 바치는데 왜 악마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이유는 다른 이야기와 엮이면서 해결된다. 더 많은 권능에 대한 욕심을 가득한 바텍 일행과 성장을 포기한 채 현실에 만족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좋은 대비를 이룬다.

 

이야기는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바텍 등이 갈구했던 욕망을 먼저 얻은 선대가 어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존재하는지 보여준다. 욕망의 충족이 형벌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형벌은 끝없이 이어진다. 신들의 사자들이 바텍에게 몇 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무시한 대가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욕망에 무작정 휘둘릴 때, 참회하고 잘못을 되돌릴 마지막 기회를 차버릴 때 등이다. 이야기가 거칠게 진행되지만 섬세한 상상력은 읽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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