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 어느 요양보호사의 눈물콧물의 하루
이은주 지음 / 헤르츠나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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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 번역가 이은주의 요양보호사 이야기다. 저자의 이력을 읽다보면 번역가의 삶이 결코 녹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일을 경험했는데 그 중 하나가 요양보호사다. 저자 자신도 요양보호사를 하게 된 계기가 봉사활동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적어놓았다. 자신은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실제 이 사명감이란 단어는 많은 곳에서 사용되는데 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압박하고 피곤하게 만든다. 실제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책과 방송을 통해 조금은 알고 있다. 육체적인 문제 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음을 조금씩 이 에세이 속에 녹여내었다.

 

이 책은 시간 순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요양보호사로 요양원에 있었던 이야기를 먼저하고, 봉사자에서 요양보호사로 되기까지 보여준다. 그 후 데이케어센터와 재가방문의 경험을 보여고, 자신의 생각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이 과정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해 놓았고, 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아마 그녀의 블로그에 실명 노출 등을 이유로 비방하는 글도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나는 솔직히 실명 하나도 찾지 못했다. 19살 학생이 요양보호사가 되고 싶다고 단 댓글은 우리 사회가 요양보호사를 보는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감안하면 그 학생을 나도 응원하고 싶다.

 

오래 전 큰아버지가 요양원인지 요양병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곳에 머문 것을 본 적이 있다. 마지막 임종 전에 본 모습과 열약한 환경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과연 이런 곳에 내 부모를 모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현실은 그런 곳이라도 모실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직장 상사가 약한 치매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경험하는 일을 들려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불만이 쌓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데이케어센터에 보내지만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작은 갈등들을 만드는 모양이다. 처음 예상한 것과 다른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다.

 

요양원에 부모를 보낸 사람들 중 상당수가 부모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표현은 아직 우리 사회가 가진 한계일 것이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노인 인구는 앞으로 더 많은 요양원 등을 필요로 할 것이다. 각박한 삶 속에 병든 부모님을 집에서 수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재가방문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단순히 환자를 돌보는 것을 넘어 가사도우미 일도 같이 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읽다 보면 요양원 등에서 요양보호사를 어떤 위치에 놓고 이야기하는지 조금씩 흘러나온다. 나이 많은 요양보호사가 대부분인 현실 속에서 전산입력 문제까지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만 과도기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왜 요양보호사의 책임만 교육되고 보호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교육되지 않는가.” 이 문장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책임 전가 문제를 보여준다. 한쪽으로 책임을 넘기면 넘긴 쪽은 다른 한쪽을 비난하고 자신은 질책자로 남는다. 앞에서 말한 사명감 같은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강요된 사명감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지 잘 안다. 요양원에 부모를 맡긴 다음에 제대로 찾아오지도 않는 보호자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저자는 요양인을 제우스와 뮤즈 등으로 부르면서 익명성을 띄우고, 그들의 삶을 공경한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조카손자까지 돌봐야 하는 저자의 삶이 좀 더 즐겁고 가벼웠으면 한다. 신에게 “사람은 왜 늙고, 병들어서 죽어야하는지 묻고 싶어진다.”고 한 말 속에 그녀가 마주한 수많은 요양인들의 아픔과 고통과 힘겨움 등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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