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학 - 고광률 장편소설
고광률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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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통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대학 교수들의 갑질과 재단 문제 정도였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면 대학교수들의 암투, 질투, 모략, 욕망 등이 뒤섞여 있다. 국공립이면 조금 다를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사학의 경우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시간강사법 개정을 둘러싸고 대학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려주는 책들이 이미 나와 있고, 총장 자리를 둘러싼 온갖 암투와 비리 등은 결코 낯설지 않다. 작가는 이런 학교 문제 중 대학교수 사회와 재단에 집중한다. 작가 자신이 30년 동안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고민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그렸다고 한다.

 

일광학원 재단의 일광대학교는 중부권 대학이다. 이 대학은 일광건설을 운영하던 초대 이사장 모준오가 세금 문제를 피하기 위해 설립했다. 이 아이디어를 낸 인물은 주시열인데 현재 총장인 모도일과 대척점에 있는 실세 교수다. 한때 주시열이 총장이었던 적이 있다. 모도일은 하버드 의대전문대학원 출신이다. 선친의 유훈에 따라 주시열을 내처지 못하고 함께 하고 있다. 이 둘이 학내에서 각각 파벌을 형성하고 견제하면서 학교가 굴러간다. 이사장 집안이고 총장이면 절대 권력을 휘두를 것 같은데 반대 파벌과 법 때문에 운신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작가는 이 부분을 파고들어 줄서기, 파벌, 암투, 비리 등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사학 비리를 파헤치는 소설이 아니다. 작가는 모도일 총장이 뭐가 아쉬워서 비리를 저지르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권력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지 못할 때 참지 못한다. 일광대학은 교육부의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가선정되어 부실 판정을 받게 된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학생들은 총장 퇴진을 요구하고, 시위를 벌이고, 총장실을 점거한다. 총장 반대편에 있던 파벌은 새로운 총장을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수장은 전 총장이었던 주시열이다. 여기에 감사실장 봉백구와 직원 출신 비정년 교원 공민구 등이 등장해 대학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낯설지만 낯익은 상황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대학교수들이 직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소설에서 지적할 때 놀랐다. 교수들의 특권의식은 또 다른 권력을 만나는 무력하다. 일광대학에 의대가 있는데 의대생들도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다. 의대 편입 문제를 그들이 지적한다. 이 지적을 보면서 학교 비정규직 교사들을 직원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을 때, 공사에서 비정규 직원들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 의견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노력과 성취와 기득권이 능력주의란 단어로 포장되어 유통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한 번의 시험 합격이 만들어낸 문턱은 턱없이 높다.

 

앞부분에 의대 학장 윤우가 이야기를 끌고 나갈 것 같았는데 스트레스로 쓰러지면서 중심에서 밀려났다. 이후 작가가 개입해 학교 내부의 문제와 이 학교가 어떻게 설립되고 운영되었는지 알려준다. 공민구가 중심에서 이야기를 풀어갈 줄 알았는데 그도 이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이다. 교원과 직원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기는 한다.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모도일 총장은 분노하고, 교직원들을 모으고 휘두른다. 이 권력에 기생하는 교직원들은 그에게 충성하고 그의 눈치를 볼 뿐이다. 학자적 양심이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고한 교수의 위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부분을 아주 희극적으로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솔직히 이 부분이 약하다.

 

처음엔 조금 쉽고 가볍고 풍자적이고 유머스러운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작가는 대학의 문제를 다양하게 다루지만 깊이 파고들어가지 않으면서 왠지 모르게 중심이 빈 듯한 느낌을 준다. 대학교수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총장에 충성하거나 반대 파벌의 움직임 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재밌는 부분 중 하나는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인물들 대부분이 일광대학 출신이란 점이다. 마지막에 공민구가 교패를 닦는 장면은 학교에 대한 그의 애정과 바람을 보여준다. 같은 동문인 봉백구 실장이 한 행동과 대비된다. 기대와 다른 전개와 결말이다. 어쩌면 현실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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