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 - 첨단 과학기술과 편의주의가 인도한 인류세의 풍경
박병상 지음 / 이상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부제에 나오는 ‘인류세’라는 단어가 낯설다. 이 단어는 2001년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루첸이 처음 제안했다. 물론 공식적인 지질시대는 아니다. “인간의 힘이 너무 강력해져서 지구 시스템 전체의 기능을 교란할 정도가 되어 급기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를 초래했다”는 글에서 유래했다. 실제 이런 상태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문명을 건설한 인류에게 이 시간은 점점 단축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발 혹은 선동으로 환경운동하는 생물학자가 여기저기 기고한 글을 모아 재편집한 책이다.
저자는 나가는 글에서 이 책이 이론보다 선동을 유도하려는 마음으로 글을 모았다고 말한다. 실제 글을 읽다 보면 구체적인 수치나 자료보다 주장과 가정이 더 많다. 어느 순간에는 과학기술 시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현대 과학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것을 문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의 삶이 편해졌지만 동시에 수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는데 저자는 이 문제를 과도하게 부풀린다. 어느 부분에서는 나 자신도 생각한 것이고, 동의하는 부분도 많지만 현실과 미래를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저자 자신도 현실과 미래를 모르지는 않는다. 선동이란 목적에 맞게 더 부풀렸고, 우리 사회의 미래가 더 안전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1장은 유전자 조작의 문제를 다룬다. 2장은 화석 연료와 발전을 다루고, 3장은 핵발전소 문제를 다룬다. 4장은 우리에게 편의를 강요하는 과학기술 이야기를 한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할 때 내가 관심을 덜 둔 부분이 드러났다. 단일품종의 위험을 알려주고, 과연 유전자가 교정의 대상인지 질문을 던진다. 과학 기사를 읽으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 구체적이고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2장과 3장은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발전소가 없다면, 아니 전기가 없다면 우리 삶은 어떨까? 저자는 환경과 안정성에 중점을 둔 채 이야기를 풀어간다. 독일의 사례를 많이 드는데 생산과 소비를 같은 지역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동의한다. 원자력발전소가 그렇게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면 서울 한강 부지에 핵발전소를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태양광 이야기에서 사용 시한이 지난 패널 문제가 핵폐기물보다는 안정하고 비용도 싸다는 부분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오염수를 무단으로 방류하겠다는 이야기가 얼마 전 이슈화되었는데 왜 이것이 문제인지도 정확하게 짚어준다. 몰랐던 이야기 중 충격적인 것은 한국 분유업체들이 체르노빌 사건 이후 처치 곤란했던 분유를 몽땅 수입해 시중에 풀었다는 것이다. 일관되게 나오는 자본의 거대한 욕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마지막 장에서 과학기술의 한계와 문제점을 파고든다. 언론에 나오는 수많은 장밋빛 기사들이 바라는 것이 연구비를 얻기 위해서란 지적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편의, 최첨단, 가상공간, 스마트, 우주여행, 자율주행 등에 대한 문제 지적은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시대의 발전과 변화를 거스르려고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변화와 편의를 되돌리자고 한다면 누구나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덜 사용하고, 덜 편리해지는 것이 모두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동의한다. 생태주의에 물들어 과학기술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