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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작가의 소설이다. 같은 한국 입양아 동생이 자살한 후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 마주한 과거와 현실을 다룬다. 동생의 방을 돋보기로 샅샅이 뒤져 자살 이유를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그녀의 생각과 다르다. 이 다름이 읽으면서 계속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불편함은 입양아란 이유로 양부모들에게 학대를 받았다거나 심한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과 생각이, 삶이 그렇게 만들었다.
헬렌은 현재 뉴욕에서 문제아로 불리는 학생들을 지도한다. 자신을 ‘믿음직 언니’라고 부른다. 이 학생들이 그녀에게 내뱉은 언어들을 보면 심한 표현이 넘쳐난다. 일상적이다. 그녀는 이것을 무시한다. 뉴욕에 오기 전 그녀는 밀워키에서 예술을 했다. 어느 정도 성공하는 듯했지만 표절과 모방을 문제 삼으면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살인적인 물가 수준을 자랑하는 뉴욕에서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글이나 장면들은 화려한 도시 이면을 잘 보여준다. 그녀 자신이 제대로 된 옷이나 신발을 산 적이 없다. 그녀가 쓴 팸플릿에는 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역시 불편하다.
양부모는 헬렌이 집앞에 나타난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이 연락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삼촌이 연락해서 왔다. 왜 연락하지 않았을까? 집에 들어가 다시 마주한 그녀의 방은 과거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그녀가 떠날 때처럼 먼지가 가득하고 지나치게 크다. 양부모들은 지나치게 검소하고 억압적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메뉴판과 가격을 대조할 정도고, 할인되는 상품이 아니면 사지 않을 정도다. 실제 그녀의 삶과 비교하면 깨끗할 수 있지만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녀가 양딸이란 사실 때문에 집에 들이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이들의 관계는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동생의 삶을 자세히 살펴 자살의 이유를 밝히려고 한다. 동생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 동생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녀가 생각한 동생의 삶과 조금 다르다. 장례식 때문에 친척들이 와서 동생과의 일화를 들려주는데 그녀가 아는 동생의 모습이 아니다. 친척들은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헬렌도 얼마 전 동생이 자신을 찾아온 적이 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동생을 집에 머물게 하고, 같이 동물원을 다녀왔다. 이와 비슷한 경험들이다. 나중에 동생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이 방문과 여행은 이유가 있다.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동생이 남긴 기록은 모든 것이 지워진 컴퓨터의 휴지통에 들어있었다. 이 문서 하나가 입양아 동생이 어떤 삶을 살았고, 자살한 이유를 들려준다. 그녀보다 먼저 읽은 양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부모의 진한 사랑이, 아픔이, 고통이, 슬픔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자살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장기로 새로운 삶을 얻기 바라는 그 마음이 강하게 다가왔다. 홀로 동생의 무덤을 찾아가 동생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녀석의 자살은 걔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한 일이었고, 걔가 할 수 있는 가장 관대한 일이었어.”라고 말한다. 더디고 불편하게 읽히던 소설이 이 문서 하나로, 헬렌의 인식으로 완전히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