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관 살인사건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8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강원주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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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 중 한 권을 읽었다. 다른 두 권도 집에 있는데 솔직히 말해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현학적이란 글을 보고 교코쿠도 나츠히코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이 소설을 조금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정말 힘들게 다 읽었다. 현학적인 내용은 뺀다 해도 트릭 등을 아주 열심히,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나도 활자만 따라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다시 읽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느리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고 싶다. 혹시 하는 마음 때문이다.

 

후리야기 성관은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넣어둔 성관과 닮았다고 하여 흑사관으로 불린다. 이 흑사관의 주인은 산테쓰 박사였다. 그는 유럽에서 의학과 마술을 연구한 인물이다. 이 가문은 카테리나 데 메디치의 사생아라는 비앙카 카펠로로부터 시작한다고 전해진다. 이 이름과 보스포루스 해협 동쪽이란 지명 때문에 이 흑사관이 일본이 아니라 터키 근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탐정부터 출연하는 인물들이 모두 일본인이다. 아주 현학적인 탐정인 노리미즈 린타노나 하제쿠라 검사나 구마시로 수사국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후리야기 가문은 이상한 죽음을 계속하고 있다. 산테쓰 박사가 1년 전에 기괴한 방법으로 자살했고, 흑사관 안에서 감금된 채 길러진 네 명의 외국인들이 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흑사관에 들어왔고,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들 중 한 명이 죽으면서 노리미즈가 하제쿠라와 구라시로 등과 함께 흑사관에 들어와 수사를 한다. 비극적인 가문 이야기와 연쇄살인과 신비주의 등을 엮어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사실의 나열보다 신비주의, 점성술, 종교학, 심리학, 암호학 등의 다양한 학문들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추리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전문 분야 이야기가 나오면 집중력이 흩어진다. 수많은 문헌과 그 책에서 인용한 문장과 지식 등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뭐 덕분에 이 부분을 가볍게 스쳐지나가듯이 넘어가게 되지만 말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수사를 의뢰하고, 용의자 등을 심문하는 과정은 일반 추리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독자를 압도하는 작가의 지식들이 끝없이 나열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단하다. 어떤 순간에는 이 모든 문헌들이 작가의 창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작가가 엄청난 장서가인 듯하다. 책 사느라고 사업이 망하고, 가세가 기울 정도라니 대단하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이 문헌들을 읽고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인용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 책 사는 것보다 산 책을 읽는 것이 더 힘든 일이지 않는가. 물론 이 내용을 소설 속에 제대로 녹여내는 것은 더 힘들다.

 

아무리 힘든 소설이라고 해도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누가 범인인지 추론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작가는 이 추론을 아주 어렵게 만든다. 현학적인 내용들로 용의자로 심문하고, 용의자들도 현학적으로 대답한다. 그의 추론과 상관없이 누군가가 죽어나간다. 추리 내공으로 한 가지 가능성을 머릿속에 염두에 두고 읽었는데 범인과는 상관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나를 곤혹스럽게 한 것은 흑사관의 구조와 과학을 이용한 가능성들이다. 고전 추리소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트릭인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약하다. 음에 대한 것은 또 어떤가. 솔직히 내가 지금 소화하기에 버겁다. 괜히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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