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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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소설이다. 아니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300쪽이 넘지만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왜냐고? 운문으로만 구성된 책이고, 이 운문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것은 운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문체가 가독성을 높이고, 엘리베이트를 이용한 설정은 다음 층에서는 누가 등장할지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호기심에 멈추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미국 흑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잠시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윌리엄의 형 숀이 총을 맞고 죽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너무 슬퍼다. 엄마의 통곡은 또 어떤가. 경찰에 밀고할 수도 있지만 이 동네에 룰이 있다. 첫째 울지 마라, 둘째 밀고 하지 마라, 셋째 복수해야 한다. 윌은 울지 않으려고 하고, 밀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수를 하려고 한다. 숀과 함께 쓰는 방에서 숀의 총을 발견한다. 윌은 누가 범인인지 짐작할 뿐이다. 마지막 룰을 지키기 위해 그는 허리춤에 총을 차고, 엘리베이트를 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 엘리베이트 안에서 일어난다. 자신이 생각한 살인자를 죽이기 위해 탄 엘리베이트가 로비 층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것도 각층마다 새로운 인물이 타면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각층마다 멈추는 엘리베이터에서 윌이 아는 사람들이 탄다. 이 인물들은 모두 숀이나 윌과 관계있다. 이 인물들은 이 룰이 만들어낸 비극을 차분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복수란 이름 아래 행해진 살인의 이면과 숨겨진 사실을 낱낱이 드러낸다. 룰에 지배받던 윌은 억눌렀던 감정을 표출한다. 단 한 번도 총을 잡은 적이 없던 열다섯 살 소년의 삶이 뒤흔들린다. 총에 몇 발이 장전되는지도, 사람을 겨냥하는 방법도, 제대로 총을 휴대하는 법도 그는 모른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룰을 지켜야 한다.

 

룰 때문에 비극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엘리베이터의 시간은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로비까지 가는 과정이나 대화를 생각하면 물리적 시간은 비현실적이다. 물론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트란 공간 속에서 만남이 이어지지만 이야기의 공간은 밖으로 확대된다. 이 확대된 공간과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비극은 단순히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가족의 비극이자 동네의 비극이고, 미국 흑인들의 비극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단순히 운문으로 쓴 것과 비극을 보여준 것만으로 이 소설을 평가하기는 부족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담배 연기 가득한 엘리베이트 안의 풍경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과거가 나열되면서 풀려나오는 사실이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다.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 느낌이지만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표현이 없어 가독성을 더 높여준다.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또 어떤가. 그렇게 해서 밝혀지는 불편한 진실들은 또 어떤가. 인터넷 서점에 나온 수많은 수상 이력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예상한 것을 훨씬 뛰어넘은 작품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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