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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데이비드 굿하트 지음, 김경락 옮김 / 원더박스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얼마 전에 읽었던 <강남 좌파 2>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의 시선을 가장 끈 것은 이제는 익숙한 강남 좌파란 이름보다 소득계층 20%대 80%이란 프레임 분석 때문이었다. 20% 계층이 만들어내는 정책들이 나머지 80%를 위한 정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과 이들이 자신들의 계층을 강화하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현실이 노동 귀족이란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강준만은 이 책에서 외국 사례 몇 가지를 들었는데 이것이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세계적 현상으로 단순히 치부할 문제인가는 논외로 하고 이 새로운 프레임은 나와 주변 사람들의 인식을 새롭게 돌아보는 역할을 했다.
이 책도 20% 대 80%의 대결 구도를 내세운다. 그 구분의 틀은 애니웨어(Anywhere)와 섬웨어(Somewhere)다. 애니웨어는 교육 수준이 높고 이동성이 강하고 자율과 개방을 지지하며 급격한 사회 변화에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섬웨어는 교육 수준이 낮고 뿌리 애착이 강하며 정서적으로 보수에 가까우며 수십 년 동안 공론장에서 소외됐으나 최근 정치를 흔드는 중심 세력이 되었다. 브랙시트와 트럼프 당선을 주도한 세력이 바로 섬웨어란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하려고 하지 않은 현상을 이 프레임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읽으면서 영국의 특수성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조금씩 이해되었다.
거대한 자유화의 물결이 보수당만의 것은 아니다. 진보 진영도 이 변화의 물결에 쉽게 동조했다. 한국의 경우도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동남아 지역 등에서 얼마나 많은 저임금 노동자를 들여와 산업현장에 투입했던가. 하지만 지금은 이 산업연수생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회, 경제 문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은 이민자들이 더 큰 문제인 모양이다. 이민자에 난민까지 겹쳐 한 해에 수십 만 명이 들어왔다고 하니 엄청난 숫자다. 전통적인 도제 시스템이 무너진 상태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대체한 인력은 해외에서 들어왔고, 살면서 자신의 동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섬웨어들은 점점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이 이민자 제한 같은 문제에 반대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애니웨어들은 고학력자이자 이동성이 강하고 국민 국가란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저자는 통계 자료를 통해 애니웨어와 섬웨어들의 생각이 어떻게 시간의 흐름 속에 변했고, 권력과 정책이 애니웨어 중심으로 변했는지 보여준다. 이 자료들을 보면서 내가 살면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그들의 이상이고, 내 이웃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최근 내가 조금씩 깨닫게 된 부분이기도 하다. 예전에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대선에서 패했을 때 저지른 잘못 중 하나가 우리 진영의 분위기와 지지층만 들여다 본 것이었다. 지금도 이 부분은 내가 상당히 많이 경계하고 있지만 감정은 쉽게 이성을 뛰어넘는다.
런던 중심의 경제와 문화는 서울 중심의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서울 위성 도시들이 서울 출퇴근자를 위해 지하철 등을 건설하는데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은 그런 투자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단순히 지역감정만으로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이해되는 순간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도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 졸업자가 늘어나면서 기업은 고졸들의 교육과 직업 훈련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더 단순한 노동은 이민자들이 차지한다. 금융이나 지식 경제 등의 고소득을 얻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은 애니웨어들 것이다. 능력주의란 것이 만들어낸 사회계층 분화다. 한국도 계약직과 정규직의 급여 차이가 얼마나 큰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또 어떤가?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가족에 대한 것이다. 여성이 원하는 것이 아이들과 더 많이 머무는 것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전업주부의 힘겨움을 옆에서 보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 맘들이 아이들과 더 머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자주 본다. 진심의 분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실제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전일제가 아닌 파트타임 일자리란 사실은 소득 등과 함께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애니웨어 가족이 살고, 교육하는 방식이 섬웨어 가족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 높은 소득을 올리는 전문직 여성의 예나 예전에 전문직 남성이 결혼한 상대가 어떤 직업이었는지 말하는 대목은 이 애니웨어란 집단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특히 런던 중심의 애니웨어 집단의 지배가 계속된다면 영국의 분열이 가속화될 것이란 부분은 곧 우리에게도 닥칠 문제다. 가족, 고용, 조세정책 등에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